리하르트 슈트라우스 Morgen
잠깐! 글을 읽기 전, 어둠만이 남은 이 세상에 하나 남은 아침이 있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은지 생각해 주세요. 그 사람을 떠올린 채로 글을 읽어 주세요.
평소에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몰아봤다. 마지막 화까지 시청한 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Morgen이 떠올랐다. Morgen은 독일어로 아침, 내일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아침'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생각난 건 아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위로의 메시지를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들려준다. 그중 내게 영향을 미친 말은 거의 차민서(여성 정신과 의사)의 대사였다. 극의 초반엔 그녀의 직설적인 모습이 다소 까칠하게 비춰진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게 하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에 상담사에게 전문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긴 하나 뜬구름 잡는 듯 추상적인 말들은 내겐 큰 힘이 되지 않았다. 내 몸을 감싸는 포근한 이불이 아니라 허공에 펼쳐진 이불 같았달까.
"감정에도 근육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하면 운동하듯이 마음도 훈련을 해보는 겁니다."
"제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근데 누가 혹시 유찬 씨한테 '모자라다', '부족하다' 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럼 그 말은 누가 한 걸까요?"
"... 제가요..."
"다른 사람한테도 하면 안 되는 말을 그동안 본인 스스로한테 하고 계셨네요?"
"그렇네요..."
"선생님이 그랬는데요, 꿈을 이루려면 그 꿈 근처에 있어야 된대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서 '나에게 상처를 제일 많이 준 건 나였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내가 쏜 화살로 아팠을 나에게 주는 선물로 슈트라우스의 Morgen을 골랐다. 예전엔 이 곡의 제목을 '아침'으로 번역했지만 정관사 der가 없기 때문에 '내일'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고 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했던 4개의 가곡 중 마지막 곡이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행복을 노래하는 이 곡이 더욱 낭만적으로 들린다.
슈트라우스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친 이 곡을 나는 '사랑하는 나에게' 선물한다. 왠지 모르게 이 곡만 들으면 절망 속에서도 기대, 희망을 품게 된다. 정말 내일의 태양이 다시 빛날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오는 것처럼.(글의 도입에서 떠올렸던 이에게 이 곡을 추천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덕분에 그분의 새로운 아침이 또 내일이 더욱 찬란해질 예요.)
<가사>
내일 태양이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 위에서
태양을 호흡하는 땅의 한가운데서
우리, 행복한 우리를,
내일은 다시 결합시켜 주리라
그리고 넓은 파도가 푸른 해안으로
우리는 조용히 천천히 내려가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리라
그러면 우리 위에 조용한 행복의 침묵이 내려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