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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Jan 15. 2024

졸지에 '개'가 된 아버지

- 아들아 그래도 '개'는 좀 아니지 않니?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바베큐폭립을  열심히 집중해서 뜯어먹느라 남편이 나에게 하는 얘기를 잘 못알아 들었다. 그래서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자 남편이 핀잔을 준다.


"왜 내가 하는 얘기를 잘 안듣고 그래?"라고.


그런데 옆에서 같이 폭립을 뜯어먹던 아들이 남편의 이  말을 듣더니 갑자기 피식 소리 내면서 웃는다. 웃을 포인트가 아닌데 왜 웃지? 하고 궁금해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갑자기 왜 웃어~?"


그러자 아들이 바베큐소스  묻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아 말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생각나서요." 키득키득.


엥?  이 상황에서 왜 그 속담이 떠올라서 웃는 거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 아빠와 싸울 때 아들이 소리치던 말이 떠올랐다.


"왜 내 말을 똑바로 안 듣고 그래요!! 왜!! 나도 말할 게 있으니까 좀 들어보라구요!!"


예전에  아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소리를 지르면, 화가 난 남편이 아들의 말을 자르고 안 듣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때마다 아들은 저렇게 소리 지르며 더 화를 내곤 했다.  이렇게 자신의 말을 안 들어주던 아빠가 엄마한테 말 좀 들으라고 하니, 아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던 모양이다.


아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개'에 비유당한 남편이  언짢아할까 봐 분위기 전환을 위해 얼른 끼어들어 말했다.


"아들~ 아빠가 요새는 아들 말 잘 들어주잖아~"


사실이 그랬다. 남편도 나도 아들을 처음 키우며, 어떻게 훈육할지 몰라서 우왕좌왕 하던 시절이 었다. 아들한테 화도 내고 언성도 높이고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많은 공부와 대화와 훈련(?) 끝에, 요즘은 아들 말을 잘 들어주려 하고 화가 나도 소리 지르지 않고 기다려주려 노력 중이다. 이렇게 우리가 먼저 달라지니 아들도 많이 달라져서 아들과의 갈등도 많이 줄어들었던 터다. 


아들도 엄마 아빠의 노력을 모르지 않기에, 내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아빠가 아들 말 잘 들어준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한다.


"묻은 똥을 좀 닦긴 했지~ㅋㅋ"


아들이 버르장머리 없게 아버지를 개에다가 비유한 것도 모자라 저렇게 비아냥거리기까지! 맛있게 폭립을 먹던 남편은 졸지에 '똥 묻은 개', 아니,  '똥 묻었다가 조금 닦아낸 개'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저 말없이 듣는다. 부정도 하지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같이 웃어주고 있다. 예전에 불같던 남편의 성격을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정도면  똥 닦은 개가 아니라 거의 득도한 보살님이 아닐까.  




그림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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