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여 가족 모두가 각자의 신년 목표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표를 다른 이에게 공유하면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거창한 이론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멋드러진 그 명분을 내세워, 좀처럼 방에서 안 나오는 사춘기 아이들을 불러내 모았다.
엄마인 나부터 새해 목표를 이야기했다.
"엄마는 올해 너네들과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해. 그리고 책을 200권 이상 읽을 거야~."
그랬더니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묻는다.
"연간 200권이면 하루나 이틀에 한 권씩은 읽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해요?"
나는 어깨를 으쓱대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원래 목표는 거창하게 세워야 하는 거야. 큰 목표를 가져야만 실패하더라도 더 많이 성장하는 거라고."
자기계발서에나 나올법한 이 말을 해주며, 아이들이 이 기회에 엄마로부터 하나라도 배우기를 바랬다.
문제는 그 다음 딸아이 차례였다. 딸아이는 학교 생활 관련 목표 몇 개를 이야기한 뒤 이런 목표를 말했다.
"나는 올해는 매일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
이 말을 듣고 나도 남편도 깜짝 놀랐다. 매일 6시 이후 안 먹는다니. 그럼 저녁식사를 저녁 6시 이전에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학교가 멀어서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6시가 다 되거나 그 이후에 올 때도 많은데, 이게 말이 되는 목표인 건가? 이 목표를 지키려다간 저녁식사를 굶어야 할 날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어 덜컥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그건 안돼~! 그게 어떻게 가능해? 학교 끝나고 오면 거의 6시인 날들이 많을텐데! 그럼 엄마는 6시 전에 저녁식사 준비를 마쳐놔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도 거들며 말했다.
"주말 저녁에 가족이 다 같이 외식이라도 하려면 6시 넘어야 가능할텐데, 그럼 너 때문에 가족 외식도 못하게 되는 거잖아. 그건 안돼. 그 목표는 안돼."
그러자 딸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 목표 가지고 왜 그래요!! 목표를 얘기하라 해서 내 목표를 내가 정해서 말하는 건데 왜 엄마, 아빠가 된다 안된다 해요!!! 그냥 들어주면 되잖아요! 그럼 엄마는 엄마 목표 지키려면 맨날 책만 읽고 있어야 한다는 소린데, 그러면서 어떻게 우리랑 보낼 시간이 날 수 있어요! 엄마도 말이 안 되잖아요!! 나 말 안 해! 내 목표 말 안 해줄 거야!"
그러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어이쿠. 내가 잘못했구나. 기대에 부풀어 기분 좋게 새해 목표를 말하는 아이에게 무조건 안된다고 달려들다니 정말 잘못했구나. 아이 말대로 자기 목표 말하는 거 그냥 들어주고 응원하고 격려해 주면 되는 건데 내가 왜 판단을 하고 있었을까.
부랴부랴 사과를 했다. 아이가 목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엄마도 빨리 식사준비를 하는 등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아이를 간신히 달랬다. 화를 가라앉힌 딸의 나머지 이야기들과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무사히 새해 목표 공유 시간을 마쳤다.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주겠다며 의기양양하다가 오히려 아이로부터 호되게 혼난 시간이었다.
들어주기.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가장 기본적인 경청의 자세를 오늘 아이로부터 배웠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육아(育兒)의 과정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육아(育我)의 과정이라는 스승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