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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Dec 23. 2023

아이의 사랑선물


아이가 눈을 부비고 나온다.

빨간색 바탕에 루돌프와 산타가 그려져 있는 옷을 입은 아가의 몸에 이불 속 온기가 피어오른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거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펴고 까만색 펜을 잡고 무언가를 쓰고 있다.

아이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엄마 품에 안긴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엄마의 보드라운 잠옷이다. 양 볼을 비비며 향을 맡으니 더 나른해진다. 창밖을 보니 하얀 눈송이가 하늘하늘 내려앉고 있다.  


'좋은 하루가 시작되었네.'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가 답한다.


'엄마,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화이트 벌쓰데이야.'






그렇다. 오늘은 아이 엄마의 생일이다.

아이는 이 날만을 기다렸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선물들을 드디어 엄마에게 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쌍둥이 언니와 아빠도 아직 침대에 있다. 엄마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얼른 장난감 방으로 들어가, 나무로 된 하늘색 함을 열었다. 가장 소중한 물건을 보관해 두는 아이만의 보물상자이다. 작은 손을 뻗어 자신의 손바닥 만한 갈색의 무언가를 꺼낸다. 엄마에게 건네는 모습을 상상하며 선물을 꼭 쥐어본다.

 

아이는 엄마의 책상 옆으로 걸어가 쑥스럽게 웃을 때만 생기는 보조개를 보인다. 엄마의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친 후 그 위에 자신이 직접 만든 선물을 조심스레 올려 두며 말한다.


'엄마, 회사에서 나 보고 싶을 때 봐.'


점토로 만든 작은 아이였다. 단발머리에 긴 티셔츠와 치마를 입 리본이 달린 신발까지 신고 있다. 티셔츠의 한가운데에는 몸을 다 덮을 만한 큰 하트가 빨간색으로 칠해져 곱게 놓여 있다. 얼굴은 활짝 미소를 띠고 있는 게 딱 지금 엄마 앞에 서서 웃고 있는 아이와 같았다.


엄마는 아이의 말간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팔로 아이를 천천히, 하지만 꼬옥 끌어안고는 고맙다 말하며 덧붙였다. 우리 아가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구나. 이거 만들면서 엄마 생각 많이 했겠네.라고.

그리고 속으로만 떠올려본다. 어쩌면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아이가 나를 보고 싶어 하기에 이런 선물을 주는 건 아닐까.




아침 해의 빛이 거실 중간까지 비추기 시작하자 쌍둥이 언니아빠도 거실로 나왔다.

엄마에게, 아내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한 마디씩 하고는, 나뭇가지를, 차 위를, 도로를 하얗게 덮은 눈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엄마는 전날 아이 외할머니가 가져다준 미역국을 끓인다. 간장 양념 고기도 프라이팬에 데운다. 브로콜리, 김치, 멸치차례대로 상 위에 올려둔다.


식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아이는, 엄마 혼자 부엌에서 종종거리는 모습에 마음이 쓰인다. 평소 같았으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밥 먹으러도 오지 않던 아이가, 책을 홀딱 엎어놓고는, 주방으로 발걸음을 총총 옮긴다. 가족들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려는 것이다. 이어서 아이용 계단을 전기밥솥 앞에 옮긴다. 작은 발을 하나씩 올려 까치발을 들고 서더니 밥솥 옆에 있는 주걱으로 밥을 담는다.


이제 드디어 아침 먹을 시간이다.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아 따뜻한 미역국 한 숟갈씩 며 역시 외할머니 미역국이 최고라며 거든다. 아이는 엄마 앞에 앉아 엄마가 밥그릇을 보기만을 기다린다.. '우와, 이렇게 예쁘게 담았어?'라는 엄마의 말을 기대하면서. 아이는 엄마밥만 특별히 예쁘게 담은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 무언가를 계속 주고 싶다. 온통 그 생각뿐이다.




시간이 흘러 저녁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시계를 흘끗 보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클레이를 하고 남은 통을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인다. 얼른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통 아래쪽을 얇게 두를 만큼의 종이를 오려낸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볼펜을 쥐고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2023년 12월. 하트. 종이를 통에 붙이더니, 자신의 침대로 올라간다.


아이는 무릎을 꿇더니 통을 가슴 가까이에 대고 꼬옥 쥐고는 눈을 감고 한참을 앉아 있는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입을 종알거린다. 아이의 속삭임, 가습기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수증기, 그리고 난로가 내는 따스한 붉은빛 만이 이곳에 있다.


잠잘 시간이 다 되어 아이를 찾던 엄마는 안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이는 엄마가 오는 소리에 들고있던 통의 뚜껑을 얼른 닫는다. 그리고 아침에 보였던 쑥쓰러운 표정을 다시 한 번 짓더니 엄마 손에 통을 쥐어 주며 말한다.  


'엄마, 내가 여기에 내 마음을 가득 담았어. 엄마 지금처럼 건강하게 해 달라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엄마, 이렇게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가 이렇게 있으니까 도 이 세상에 올 수 있었던 거야.

나는 있잖아.. 처음부터 엄마랑 만나게 되어 있었어. 엄마 사랑하려고.'






오늘, 엄마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정을 선물받았다.

아무런 조건 없는 순결함에서만 받을 수 있는 충만한 사랑이었다.  


작은 방 안의 새하얗고 폭신한 이불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이, 그리고 엄마에게 사랑을 전하는 아이의 목소리,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넓고 근사한 집이 아니더라도, 예쁜 옷을 입지 않아도, 심지어 어떠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 그대로가 사랑받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 지 알게 되었다.

아이 덕분에, 아이를 낳은 덕분에.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덕분에.


오늘이 가기 전에 아이와 엄마는 늘 그렇듯 감사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엄마는 아이가 선물을 주는 모든 순간들이 고마웠다고

아이는 엄마가 선물을 받는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잠들 것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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