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의 기쁨과 슬픔
그냥, 엄마 회사 다니느라 너네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해서
급 성장기인 열한 살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집에는 왜 이렇게 간식이 없어어~~"
그때마다 대수롭기 않게 넘겼다.
시리얼, 과자, 만두, 호빵, 견과류, 말린 고구마 등등 먹을 게 이리도 많은데 뭐가 없단 말인가.
아이들이 말하는 간식은 과자, 젤리, 사탕일 게 뻔하지. 하고.
유독 별스러웠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월요일 저녁.
지친 마음과 몸을 안고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데 첫 째가 대뜸 짜증을 부린다.
"우리 집에 너어무 먹을 게 없어어~~"
사춘기인가. 잘 만났다. 나도 짜증으로 대꾸해 줄테다.
앙칼진 소리로 답한다.
"뭐가 없어! 여기 호빵도 있고, 시리얼도 있잖아!"
엄마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챘는지 한 층 수그러진 목소리로 답하는 아이.
"시리얼이랑 우유는 먹었는데 그래도 배고파아. 호빵은 찜기에 찌라고 하잖아아. 안 그래도 어떻게 하는지 읽어봤단 말이야. 우리 둘이 있는데 어떻게 해에."
"..."
비장했던 나의 전투심리는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누구라도 있었다면, 내가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나란 사람은 아이들 간식도 제때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였구나.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냉장고를 샅샅이 뒤졌다. 아이들이 학교 다녀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 두기 위해.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과일 밖에 없다. 그거라도 깎아둘까.
작은 유리통 두 개를 꺼내 오렌지를 작게 작게 썰어 넣는다. 혹여나 먹다가 목에라도 걸릴까 봐. 딱딱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두곤 아이들에게 외친다.
"오렌지 까 두었으니까 내일 학교 다녀오면 먹어~"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답한다.
"응! 엄마. 너~~ 무 좋아! 고마워."
그날 밤.
아이들 사이에 누워 책을 읽어 주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주르륵.
목이 메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 왜 이러지.
아이 둘이서 간식을 챙겨 먹고, 책도 읽고, 놀고 있을 장면이 떠올랐을 뿐인데.
책을 손에 들고 찌륵 거리는 나를 눈치챈 둘째 아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말한다.
"엄마... 왜 울어."
말하면 더 펑펑 울 것 같아서 소리 없이 눈물만 닦아냈다. 오른쪽 잠옷 소매가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둘째 아이는 내 가슴에 작은 손을 얹고는 살그머니 안아준다.
첫째 아이는 등을 보이고 돌아 누워 동요를 부른다. 괜히 딴청 피우는 녀석.
아이가 다시 묻는다.
"엄마, 왜 울어어."
흠, 흠. 몇 번이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간신히 말한다.
"그냥, 엄마 회사 다니느라 너네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해서."
내일 하루 때문에 눈물이 나왔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일 한다고 하루 종일 곁에 있어 주지 못한 수년간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을 거다.
아침을 챙겨주지 못하고, 머리를 묶어주지 못하고, 학교 다녀와서 간식을 챙겨주지 못한, 퇴근하고 나서도 피곤한 내색만 비추었던 그 시간들이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 순간순간의 미안함들이 뭉쳐져서는 한 번에 몰려왔으니까. 커다란 뭉치가 내 가슴을 꽉 짓눌렀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터져 나왔었던 걸 거다.
누구나 자기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얻는 게 있으면 놓아야 하는 것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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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젯밤의 눈물 덕에 퉁퉁 부운 눈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주름도 펴지고 좋구먼.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