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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Jun 09. 2023

미국병에 걸려본 적 있나요

 미국병에 걸린 지는 좀 된 것 같다. 미국에 거주한 적은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015년 가을, 남편과 함께 미국 서부여행에 다녀온 후부터였던 것 같다. 서부여행이라고 거창하게 썼지만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LA와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한 것이 전부다. 원래는 LA가 아니라 파리에 갈 예정이었다. 계획을 다 짜고 비행기 예약까지 마쳤는데 출발일을 한 달 남겨두고 변심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미국에 가고 싶어서 파리행 비행기를 취소했다. 이럴 줄 알았나? 수수료 없이 취소 가능한 티켓을 끊어놨어서 금전 손실 없이 취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예정된 출발일에 파리에서 총기사고가 나서 파리시내가 마비되었다. 이럴 줄 알고 취소한 거냐고 남편이 재차 물었는데 난들아나? 나도 가끔 내 촉이 무섭다.



 촘촘한 파리여행 계획과는 달리 3주간 비행기 예약, 숙소예약, 공연 예약, 입장권 예약과 같이 굵직한 예약만 겨우 마치고 우리는 떠났다. 당시 둘 다 회사업무에 지쳐 계획형 인간이었던 나도 공항에서 다음 일정을 알아볼 정도였다. 그래도 6박 7일을 꽉꽉 채운 알찬 여행을 하고 왔다. 꿈만 같은 미국여행이 끝나고 나는 이따금 미국병을 앓았다. 미국병은 첫째를 임신하고 하와이에 다녀오면서 더 굳어졌다. 미세먼지 없는 환상적인 날씨, 친절한 사람들, 넓은 도로와 다양한 차종(차를 좋아한다), 매너 있는 운전자들, 양 많고 싱싱한 음식들, 영어만 있는 표지판까지 안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대학시절 못한 어학연수의 한이 서려서 더욱 좋아 보였는지 모르겠다. 외국살이를 해본 남편은 막상 외국 나가 살면 어려운 게 많다고 했지만 무경험자는 와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만의 병이 아니었다. 이야기해 보니 남편도 미국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봤다. 신혼 1년 반 후에 임신을 해서 아이를 연달아 낳았고, 양가 도움 없이 둘이서 아등바등 키우느라 쉼 없는 육아에 지쳐 그런 것 같았다. 미국에서 우리는 연인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어느새 전우가 되어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아이들도 많이 컸고, 조금 숨통이 트이니 미국병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 보면 또 미국에 갈 날이 올 거라 믿는다.



하와이에서 우리가 탔던 차. ALOHA STATE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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