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한다.
집 근처 도서관 프로그램 하나를 수강하는 중이다. 강사님은 매 수업이 끝날 무렵 과제를 내주시는데 이번 과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소개하기'였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어도 되고, 어쨌든 소개하고 싶은 책을 준비해오라는 것이다.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는 것도 즐거움일 텐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책이 딱 한 권 있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었다.
이 책은 열네 살 모모와 86세의 로자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가 사는 곳은 파리의 빈민가다. 주인공 모모는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로자 아주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라는 소년이다. 모모의 주변인은 알제리에서 창녀로 돈을 벌다가 지금은 창녀의 아이를 키워주는 로자 아주머니, 가족 없이 양탄자를 파는 하밀 할아버지, 권투선수였지만 지금은 몸을 파는 여장남자 롤라 아주머니다.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이탈한 가난하고 소외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그곳에도 삶의 의미와 사랑이 있었다. 모두 모모를 사랑하는 어른들이었고, 모모의 작은 세계에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었다. 모모를 돌봐주던 로자 아주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고 이제는 모모가 로자아주머니를 돌봐준다. 열네 살 모모를 열 살이라고 속였던 로자 아주머니는 오래도록 모모와 살고 싶었다. 로자아주머니가 처음 몸을 내어주었던 나이는 열다섯, 모모도 자신이 열네 살인 걸 알고 로자 아주머니를 돌볼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가 죽음에 이르고 모모는 상실감과 아픔을 맞서고자 최후까지 로자아주머니 곁을 지킨다. 모모는 숨을 거둔 로자 아주머니의 곁을 지키며 시퍼렇게 변해가는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몸에서 나는 냄새를 향수로 덮는다. 이제 모모는 자신이 열 살이건 열네 살이건 상관이 없어졌다. 숫자로 규정짓는 나이를 초월한 지 오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거부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모모는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한편, 사랑과 인내를 담으며 성장한다.
모모는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냐고 하밀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모모는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에 사랑이 필요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는다. 그럼에도 모모는 온 힘을 다해 로자 아주머니를 사랑했고, 또 자기 앞에 남겨진 생에 대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모모는 로자아주머니에게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덕분에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과 용기를 얻었다. 제목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원어로 ‘여생’이라고 한다. 어린 모모 앞에 펼쳐질 남은 생은 또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이 될 것이다. 결국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자기 앞의 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