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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Jan 12. 2024

육아휴직 두 번 해보셨나요

아이들과 내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

 작년 하반기를 느슨하게 살았다. 


 다람쥐처럼 열심히 다리를 구르며 보이지도 않는 발바닥에 땀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출산 후 처음으로 주어지는 휴가, 허나 육아는 쉼이 아니었다. 회사 대신 해야하는 또다른 (가정의) 업무랄까. 내 인생은 취업 전과 후로 나뉘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년생 딸을 얻고 나서야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출산은 끔찍한 것이라 여겼던 사람이 바로 나다. 때문에 내 오랜 친구들은 내가 연년생 딸 둘을 키우는 것에 지금도 간간이 놀란다. 

"네가 애 둘을?"




 아이들은 감히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우울증 비슷한 것도 찾아올 정도로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성취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과 보람을 느낀다. 첫 번째 휴직은 똥기저귀와 분유로 점철된 힘겨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휴직기간 동안 생산적인 취미생활도 했다. 바로 미싱(재봉)이다. 손바느질이 태교로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손바느질은 쥐약이다. 손바느질은 못하겠으니 그 비슷한 거라도 해야겠다 생각해서 동네에 있는 부라더미싱 대리점을 찾았다. 냄비받침, 앞치마, 주방장갑 따위를 만들며 입문코스를 마치고 첫 아이를 낳았다. 쉴 수 없는 워킹맘의 특성일까,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에 틈틈이 미싱으로 아이들 옷을 만들었다. 딸을 둔 엄마들의 특권은 단연 인형놀이라고 본다. 두 딸을 예쁘게 입히고 싶은데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사이즈만 다르게 두 벌씩 사자니 외벌이 가정에 사치다. 원단 1마를 사서 두 벌을 만들다가 3마를 사서 두 벌을 만들고, 4마가 필요하게 될 때쯤 복직했다. 복직할 무렵 돌아보니 공업용 미싱, 공업용 오버록, 원단산(원단이 많아 산을 이루면 봉틀러들은 '원단산'이라고 부른다.), 갖가지 부재료들과 수십개의 패턴과 책이 남아있었다. 아이들 옷부터 남편과 내 옷, 지인들에게 선물한 소품과 옷들까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많이 만들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 좀 쉬었으면 좋았을 텐데 참 미련하게도 일했다. 어깨 구부려가며 재봉하아이들 밤잠 자면 새벽까지 허리 굽혀가며 재단했다. 아이들 코트와 한복을 만들정도로 실력이 쌓였다. 복직 재봉할 시간이 없어져서 어깨와 허리 통증, 시력저하를 남기고 모두 당근과 드림으로 처분했다. 


 번째 휴직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기저귀 시절보다 손이 덜 가지만 그 동안 손놨던 교육와 생활습관이 숙제로 주어졌다. 아이들도 자기 생각과 고집이 생긴터라, 아이들을 혼내기도 하고 화가 나서 못된 말이 나왔다. 차라리 똥기저귀가 나은 것 같다. 이번에도 휴직하자마자 도서관에 글쓰기 프로그램을 등록했다. 3달을 꾸준히 다니다가 마지막 한 주를 남기고 그만뒀다. 갑자기 번 아웃이 와서. 아이들을 돌보려고 휴직을 했는데, 또 나는 글을 쓴다고 노트북 앞에만 있고 아이들은 뒷전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 놨다. 브런치 접속도 안했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니 더 화가 났다. 이 정도로 내가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구나. 그렇게 9개월을 보내고나니, 어느정도 틀이 잡혀갔다. 아이들은 당연하게 내가 내준 숙제를 하게 됐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이고(밥을 빨리 먹는 건 아직도 어렵다.), 원하는 학원에 데려다주는 가정주부 엄마로서의 역할이 자리잡혔다. 그렇게 작년 하반기를 느슨하게 살았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나의 어떤 것을 찾아봐야겠다.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거나 새해에 계획을 세우며 희망에 벅차오르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냥 어쩐지 머릿속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어쩌면 그런 스타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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