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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Apr 18. 2023

비 오는 날엔 회 먹는 거 아니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학기 전 단기 방학이 있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나날 속에서 방학을 지루하게 보내고 있던 중, 같은 반 친구 몇몇이 해외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가 초등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라고 했던가. 정보에 무지한 엄마와 연차가 불가한 아빠는 아이의 원성을 참아내야 했다. 여행한 지 오래되기도 했고 미안한 마음에 이번 주말에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한 때가 목요일 밤이었다.


 우리는 주로 속초에 가는데 이번에는 강릉으로 호기롭게 목적지를 정했다. 속초에 가면 닭강정만 먹고 왔는데 이번에는 꼭 회를 먹고 오자는 남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보통 여행계획을 짤 때 남편은 교통편과 예산을 담당한다.  나는 숙소, 가볼 만한 곳, 맛집, 쇼핑할 곳 등을 전담한다. 반대로 해본 적이 있었는데 내 불만이 남편의 불만보다 커서 결론을 저렇게 냈다.


 숙소를 정할 때 평소 관심이 갔던 곳이나 홍보성 이벤트 문자를 받은 곳을 먼저 보는 편이다. 그리고 전체 숙소를 검색해서 평점과 가격을 고려하여 정렬하 정보를 수집해서 비교해 보고 결정한다. 이번에는 이런 절차를 몽땅 생략했다. 회원가입 후 몇 년째 꾸준히 뉴스레터를 수신해 온 호텔을 이번 기회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금요일 육퇴 후 예약하는 거라 다른 곳을 알아볼 여력이 안 됐다. 어서 예약을 끝내고 누워서 자고 싶은 생각뿐. 조식은 우리의 기쁨이니 조식을 포함한 패키지로 예약했다. 좀 비싼 것 같은데 호텔 컨디션이 좋겠지, 조식이 맛있겠지 희망회로를 돌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떠나는 아침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출발했다. 5년 전쯤 대관령 양떼목장에 갔을 때도 이렇게 비가 왔는데.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라면 우리 부부는 늙고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자식이 뭔지, 젖 먹던 힘을 끌어내어 대관령으로 향했다. 경기도를 벗어나자 비가 그쳤다. 날씨처럼 화목해진 우리 가족은 내가 찾은 맛집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양떼목장으로 향했다.  


 양떼목장으로 가는 차에서 네이버로 티켓을 미리 구입했다. 4% 할인받았다며 알뜰주부인 척 남편에게 뽐냈다. 양떼목장에 도착하니 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트렁크엔 파라솔 우산이 딱 한 개 있었다. 아직 작은 아이들이라 다행히 우리 가족 네 명은 우산 하나를 옹기종기 쓸 수 있었다. 우산 하나를 네 명이 같이 쓰는 게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은 꺄르르 웃느라 걷질 못할 지경이었다. 빗속 고요한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덕분에 우리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늘 그렇듯 창피함은 나와 남편의 몫.  우왕좌왕 시끌벅적 우당탕탕 거리며 목장으로 겨우 올라가 미리 예약한 모바일 티켓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매표소 직원은 예매는 당일 사용이 안된다며 당일은 현장발권만 가능하단다. 4%의 알뜰함은 사라지고 우중(雨中) 체험만 남았다.




 장거리 여행에 지친 아이들은 드디어 호텔에 간다고 들떴다. 체크인하는데 아뿔싸, 싱글베드 2개로 예약한 걸 알게 되었다. 어쩐지 가성비 좋더라. 결국 추가요금을 내고 더블베드가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리조트와 호텔이 있었는데 리조트 안내사항 중 직접 하는 '분리수거'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호텔로 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리조트의 룸이 더 크고 좋았다. 이벤트 할인가는 사라지고, 집보다 비좁은 호텔체험만 남았다.




 이번 강원도 여행의 '현지에서 회 먹기' 미션을 달성하러 횟집에 가서 회를 먹었다. 스끼다시가 약간 아쉬웠지만, 강원도 현지에서 먹는 회라는 사실에 취해 맛있게 먹었다. 첫째 준이에게도 생애 첫 회를 조금 맛 보여주었다. 숙소로 와서 집에서 챙겨 온 과자 간식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자꾸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변기를 붙잡고 토하는 내내 아빠 말씀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엔 회 먹는 거 아니야."

뒤이어 토하는 남편을 보고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부부는 일심동체"

비싼 회 먹고 빈 뱃속만 남았다.



    

 




 다음 날 아침, 모든 것을 비운 나는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뱃속을 비우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다. 어제의 사건들이 고요하게 침잠하고 맑고 긍정적인 공기만 남은 느낌이다. 급여행 일지라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건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 인생사 아니던가. 하지만 아이들은 양에게 먹이를 주며 즐거워했고, 포근한 호텔 침대에 행복해했고, 간식에 후해진 엄마를 보며 기뻐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남편은 행복했고,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는 것, 그거면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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