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식이+빵순이=밥순이와 빵순이
"아침밥은 꼭 차려줘야 한다. 얘는 아침밥 안 먹으면 안 돼."
신혼여행 다녀온 후 시댁에 갔을 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다. 남편은 하루 세끼를 꼬박 먹는 사람이었는데 밥과 국이 있는 한식을 주로 먹었다. 어머님 말씀대로 나보다 출근이 빠른 남편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려주고 남편이 식사하는 동안 나는 출근 준비를 했다. 이 찐사랑의 패턴은 2주를 넘기지 못했다. 끝내 나는 그 시각에 눈을 뜨지 못했고 남편은 알아서 밥을 먹거나 시리얼을 먹었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먹지 않고 출근했다. 가끔 어머님이 지나가는 말로 "아침밥 잘 차려주고 있지?"라고 물으시면 바보 같은 긍정의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와이프와 엄마 사이의 박 터지는 신혼을 겪은 남편은 내겐 아침 안 먹고 가도 괜찮다고 했고, 엄마에겐 잘 먹고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전형적인 한국남자의 식성을 가지고 있다. 감사하게도 아무거나 잘 먹고 입맛이 무던한 편이나 맵거나 짜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디포리로 육수를 우려 국을 끓이면 다시다를 권하고, 볶음밥을 해주면 케첩을 뿌려 먹곤 했다. 빵순이를 만나고 이렇게 빵을 많이 먹어본 적이 없단다. 빵순이는 삼시세끼 빵만 먹고살아도 좋을 정도로 빵을 좋아했는데, 친정엄마는 이렇게 빵을 많이 먹을 거면 차라리 미국 가서 살라고 하셨다. 미국입맛(?) 답게 매운 것을 잘 못 먹고 한국인의 밥상에 매 끼 올라가는 김치도 잘 안 먹는다. 때문에 겨울의 김장문화에 필히 동참해야 하는 한국며느리의 의무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신혼시절, 둘이 군산으로 여행을 갔다. 각자 가고 싶은 곳을 한 군데씩 골랐는데 밥식이는 맵기로 유명한 군산짬뽕집을, 빵순이는 이성당 빵집을 골랐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처럼 빵순이는 짬뽕이 매워서 물만 마셨고, 밥식이는 빵이 물려 커피만 마셨다. 밥식이는 이성당에서 할인카드 없이 빵을 몇 만 원어치나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산 빵의 개수가 몇 개 안 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군산여행을 통해 자석의 양 극에 있는 서로의 입맛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자석처럼 붙어 다녔다는 신혼전설이다. 아 옛날이여.
밥식이와 빵순이가 만나 결혼을 하고 딸을 둘 낳았다. 키워보니 첫째는 밥순이였고, 둘째는 (다행히) 빵순이였다. 주말 아침이라면 느지막이 일어나 토스트로 아점을 때우고 싶은데 밥식이와 밥순이는 이름처럼 밥을 먹겠다고 한다. 결국 주말 아침은 밥팀은 누룽지를, 빵팀은 프렌치토스트를 먹었다. 저녁 한 끼를 배달로 때우고 싶어서 피자를 시켜도 밥순이는 피자를 거부하여 결국 밥을 지어 차려드렸다. 그 밥을 밥식이도 같이 먹더라.(참고로 밥식이는 피자도 먹은 상태) 밥식이와 밥순이가 순댓국을 먹으러 가면 엄마 빵순이와 딸 빵순이는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으러 갔다.
부부는 서로 다른 점을 배워가라는 뜻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인가보다. 빵순이는 김장대열에 합류하면서 내 손으로 만든 게 아까워서 김치를 먹게 되고, 밥식이는 주말의 브런치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반반씩인 것을 보면 내 편도, 네 편도 있는 유전공식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