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못하는 자의 슬픔
영어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오랜 시간 업무에서 영어를 사용해 왔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이어 미팅 때마다 늘 찾아오는 영어 울렁증… 그래도 생존을 위해 업무에 필요한 영어는 어쩔 수 없이 해왔죠. 코로나 이전에는 출장을 가거나 바이어들이 한국에 올 때만 영어 미팅을 했지만, 이후 Zoom 미팅으로 모든 회의가 전환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는 영어 미팅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영어 간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가끔 메뉴판에서 발견하는 영어 단어 하나에도 안도감이 들고, 영어로 소통 가능한 매장 직원을 만나면 그날 하루는 무슨 축제라도 열린 기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 메뉴가 있다고 해서 그걸로 바로 주문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특히 스타벅스, 아니 현지에서는 "싱바커(星巴克, Xīng BāKè)"라고 부르는 그곳에서는 메뉴판에 영어 이름이 적혀 있어도 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메뉴판을 사진 찍어 보여주며 "쩌거!" (这个, zhège)라고 해야 겨우 주문이 되더군요. 그런데 웃긴 건, 매장에선 주문대에 서서 주문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대부분 자리에 앉아서 QR 코드로 주문을 한다는 점이었어요. 글자를 못 읽는 저는 QR 주문을 시도해보려 해도, 휴대폰으로 번역 앱을 수십 번 돌려야 해서, 차라리 사진 찍고 “쩌거!” 하는 게 훨씬 편하더라고요.
QR 코드의 나라에서 길 잃은 외국인
중국에서는 QR 코드 천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에요. 수많은 QR 코드 중에서 내가 필요한 코드를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자리에 앉아 QR 코드로 편하게 주문하는 게 훨씬 더 쉬워 보이지만, 저에겐 오히려 복잡한 미션이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KFC에는… 영어가 없어?!
드디어 KFC에 도착했지만, 이게 웬일일까요? 메뉴판에 영어는 한 글자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메뉴 사진이 있어서 비주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죠. 게다가 주변을 보니 서서 주문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저도 QR 코드 주문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제 글에도 썼지만, 아주~ 긴 시간을 들여 드디어 QR 주문창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죠… 혹시나 강한 향이 나는 음식을 잘못 고를까 봐 여러 번 번역 앱을 돌려본 끝에, 결국 가장 안전한 메뉴인 치킨, 너겟, 감자튀김, 그리고 음료로 주문을 마쳤습니다. (여기서 ‘무사히’라고 썼지만, 사실 이 간단한 주문에 꽤나 시간이 걸렸다는 건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주문한 메뉴는 다행히 먹을만했습니다. 하지만 우유는 별로였고, 아이들은 달달한 음료수를 더 시켜주길 바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절 바라보더군요. "너무 달아서 그만 먹자"라는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다시 QR 코드를 찍고, 메뉴를 찾고, 주문하는 그 과정… 오늘은 정말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소 피곤했던 첫 주문이었지만, 그래도 성공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