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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Dec 27. 2024

35. 라그나로크01.폭풍전야-일곱:그의 발걸음-후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라그나로크, 로키, 헬

#. 그의 발걸음-후

 

그가 '엘류드니르(Eljuðnir : 진눈깨비에 젖은)'의 입구(또는 문지방으로 -팔란다포라드/Fallandaforað:떨어지는 위험-라고 불림)를 들어섰을 때, 니플헤임의 여왕, 헬은 자신의 옥좌에 있었다. 그녀는 옥좌에 기대어 앉아 한손을 자신의 이마에 얹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두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녀의 앞에 섰다. 하인인 '강글로트(Ganglot : 느리게 걷는 자)'가 그가 도착했음을 알리려하자, 헬은 강글로트에게 모두 물러가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얼음과 검은 회색빛으로 가득한 넓은 홀에 그와 헬만이 남았다. 그가 말했다. 


[흠.. 그래도 볼만은 하군.]

[꺼져.]


헬이 여전히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대답했다. 그를 마주하자 두통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이런 식의 대면이 유쾌한 건 아니야. 저기서 가라고 해서 온거지.]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 위를 향해 까딱거렸다. 헬은 그를 쳐다보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이제와서 발을 뺄 수는 없어. 나보다도 저것들(운명)의 부름을 먼저 받은게 아니던가? 나의 딸이여.]


 그의 말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헬의 입에서 '쿡!'하는 실소가 터져나오는가 싶더니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짚은 채로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크고 차갑고, 싸늘한 웃음이던지 홀을 넘어 엘류드니르 전체가 얼어붙었다. 마치 장송곡처럼 크게 울려퍼지던 헬의 웃음소리는 점차 잦아들며, 마치 곡을 하는 것처럼 변했다. 

 

[카하하하..! 하하.. 하아.. 하아아... 딸? 지랄도 어지간히 해야지. 네 놈이 감히 입에 올릴 단어는 아니지 않나? 이제와서.. 아니, 어디와서 아비 노릇이야? 내 어머니의 심장을 뜯어먹은 놈이! 내 인생을! 내 운명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네 놈이!!! 감히 지금 내 앞에서 아비라고?!]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시체가 된 쪽의 눈이 번뜩였다. 마치 세상의 온갖 증오와 분노가 그녀의 눈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그는 뻔뻔할 정도로 무표정하게 그녀에게 대답했다. 


[흠. 그런 시선은 너무 익숙해서. 난 그저 때가 왔다는 걸 알려주러 왔을 뿐이야. 이제 이 운명의 군대에 너만 합류하면 되거든. 제일 쎈 놈들은 진작에 출발했고, 별볼일 없는 거인들도 합류했고, 네 오라비들도 합류했지.]

[내가? 왜? 내가 왜 너따위의 명령을 받아야 해?]


 헬이 여전히 차갑게 대답하자 로키는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저치들이라고. 나도 좋아서 온게 아니야. 네 어미의 일은.. 뭐.. 굳이 사과할 생각은 없어. 다 제 복이지 뭘. 네 년이 그 꼴인 것도..]

[그러니까 나보고 닥치고 따라라? 그 일이 끝나면 여기가 얼마나 복잡해질지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 내 침실에 팔자에도 없는 시어머니들이 사단 단위로 들어와서 엉덩이로 날 깔아뭉갤걸 생각하면 죽고싶어진다고!]


헬이 그의 말을 자르며 분노를 토해냈다. 헬의 분노에 그는 더욱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뭐. 피차 말을 길게 섞어봤자, 좋을 건 없잖아? 제 때에 너의 그 요상한 배와 군대나 보내. 그게 네 몫이니까.내 용건은 그것뿐이야.]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휘적휘적 홀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한쪽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헬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다른 자식들은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아?]


 말을 마침과 동시에 헬은 자신의 혀와 입을 저주했다.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녀 자신도 알수 없었다. 이제와서 대체 무슨 대답을 듣겠다고.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살짝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어쩌라고?] 


그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가 엘류드니르를 나가 니플헤임을 벗어날 때까지도 헬은 그대로 앉아 이를 갈았다. 헬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우는지, 웃는지 모를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마치 세수라도 하듯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자신의 하인을 불렀다. 


- 저승의 수문장, 가룸(출처: https://vikingpedia.com/)


[강글레리! '가룸(Garum/Garmr : 경계가 되는 것)'을 불러! 강글로트! 예정대로 '나글파르(Naglfar/Naglfari : 손톱으로 만든 배)'를 대기시켜! ] 


'나글파르(Naglfar/Naglfari : 손톱으로 만든 배)'는 헬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따라 만들기 시작한 배로, '죽은 자의 손톱'을 모아 만들어졌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이 배가 만들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염을 할때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다. 그럼에도 결국 이 배는 완성되어 세상의 종말을 향한 항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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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01.

 이번 스노리의 서가의 내용은 '스트를룽 일족의 사가(Sturlunga saga/Sturlunga)'를 기반으로 저의 상상을 덧붙였습니다. 등장인물인 '에이나르 리그만(Einar Rigmand)'은 당시 아이슬란드의 남쪽, '비크(Vik)'에 살던 지역 유지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잉게뵤르그 베르그토스다터(Ingebjorg Bergtorsdatter)'는 토르두르의 사촌이었죠. 실제 토르두르가 이렇게 스칼드를 이용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스칼드와 에이나르의 대화는 온전히 저의 창작입니다. 다만 당시의 정세와 상황을 보면.. 토르두르와 스테인보르가 에이나르처럼 스트를룽 가문과 선이 닿아있던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스테인보르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시그바투르(Sighvatr)'의 딸로, 토르두르와는 남매사이였습니다. 스테인보르는 남편인 '할프단(Halfdan Sæmundsson)'과는 달리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었고, 그 영향력도 강했습니다. 그녀는 지역의 여러 다툼을 중재하는데 언제나 앞장섰고, 이를 통해서 이미 아이슬란드의 중남부 지역에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이런 정치적인 영향력이 이후의 상황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PS02.

 원전에서 로키가 풀려나는 부분에서 시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시긴이 그의 곁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 이런 내용으로 살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로키와 세 아이들의 만남 부분도 마찬가지로 원전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원전에서는 세 마리의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세상의 모든 속박이 풀리기 때문에 펜리르가 풀려났다고만 등장합니다. 요르문간드도 때맞춰 바다에서 올라고, 헬도 자신의 군대를 보내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원전에서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그나로크가 일어난 것으로 묘사합니다. 반면, 그 사이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죠. 저는 이에 기반하여 라그나로크가 일어나기 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다만, 역시 원전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저의 창작은 MSG 정도로만 첨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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