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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소리 May 16. 2023

고질병

달갑지 않은 회사의 선물

올해도 어김없다.


나에겐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고질병이 있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그런 느낌적인 예감이 들 때면 꼭 온다. 

올해도 그분이 오셨다.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한창 열심히 일하던 30대 중반쯤의 어느 날이었다.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에도 굴하지 않고, 시간이 나면 뛰거나 수영을 했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나름 가치 있는 소신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날도 가뿐하게 주말 출근을 하고, 월요일 아침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던 중 '어.. 어..' 하며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도 팔을 올릴 수도 없는 몸 상태가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대강 물기를 털어내고 탈의실에서 어찌어찌 창피한 장면들을 이겨낸 후에야 주섬주섬 옷을 챙겨 간신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반쪽만 움직이는 몸이 된 양 운전을 해서 집에 와서 상태를 확인해 보니, 왼쪽으로는 고개를 꺄우뚱할 정도로 돌릴 수도, 천장을 보고 바로 누울 수도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담이 왔다고 하기에도 너무 심했다. 처음으로 이런 불편함을 겪다 보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괜한 두려움도 밀려왔다. 건강하던 사람이 한 순단 무너지니 정신도 완전히 멘붕상태가 되어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회사에는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갔으나 대기 줄을 기다려 줄 만큼의 상태가 아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급히 한의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큰 일도 아니고 스트레스로 인해 근육이 뭉친 상태였던 거 같은데, 그때는 꽤나 심각하다고 느꼈었다.


그렇게 찾은 한의원의 원장님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도 일 년에 두 번씩 가는 날이면 으레 알아보시고 차트도 잘 안 보신다.

그리고는 물어보신다. "이번에는 어느 쪽이냐고"



신기하게도 한쪽만 온다.


동네 한의원인지라 할머니들 놀이터 같은 분위기다. 출근도장 찍듯 오시는 단골 환자 분들이 다수 셔서 원장님도 할머님들도 서로 너무 편하게 말씀을 나누신다. 

"그래서 나물 캐지 말라고 했잖아." "됐어. 그냥 이쪽 허리에 침 좀 놔봐." 


물론 나 같은 찐 환자들도 있다. 


일단 한의원에 도착하면 찜질을 한다. 이상하게 양쪽으로 오는 경우는 없어서 오른쪽이거나 왼쪽이다. 

빈도는 대략 7:3으로 최초 시작된 왼쪽이 좀 취약하다.

일단 치료용 침대에 누우면 뜨근한 찜질팩으로 한쪽 어깨를 감싸고 10분 정도를 보낸다. 그리고 저주파 패치를 어깨와 목 총 4곳에 부착을 하고 15분을 물리치료를 한다. 


그런 후에 원장님이 오신다. 

그리곤 여기저기 눌러보시며 이야기해 주시는데, 항상 거기가 아프다. 일부 위치에는 표식을 남기시며 증상이 발생된 곳을 중심으로 약 40~50개의 침을 꽂아 주시고 10분 정도 누워있으라 하신다. 

그런 후에는 표식을 남기신 부분에 사혈을 하고 부황을 뜬다. 

목이고, 어깨 넘어라 보이지는 않으나 검은 피가 나온다고 하신다. 

특히 안 좋을 때 많이 더 진하게 나오신다고 하니 믿을 뿐이다.


이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골 환자인 나를 주치의처럼 잘 봐주시고 계신다. 




비상약도 필요하다.


주말이거나 회사 생활로 시간 맞추기가 곤란한 경우를 대비하여 양약도 항상 준비해 놓는다.

왜냐하면 그 느낌은 아무 예고 없이 오기 때문이다.


증상이 시작된 몇 년 후 혹시나 해서 약국을 찾았는데, 캡슐로 된 근육이완제 2종을 함께 처방해 주셨고, 

생각보다는 효과를 보았었다. 수준이 심하지 않을 때는 하루 정도 복용하면서 몸에 부담스럽지 않은 스트레칭 해주면 무난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긴 했다.


일단 그분이 오시면 곤란한 생활이 시작된다. 

보통 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최소 일주일에서 2주 정도가 걸린다. 

그런 시기가 도래하면 우선 베개를 빼고 수건을 접어 베개로 삼는다.

그리고 술자리며 운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 

꼭 참석해야 하는 약속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되는 테이블의 끝자리에 앉곤 한다.


특히 라운딩 약속이 잡히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오른손잡이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치는데, 왼쪽 증상이면 신경이 온통 고개에 쏠려있다.

언젠가 한 번은 친구들이 놀리듯 이야기한다. "고개가 안 돌아가니까 잘 맞겠네." 

한 대 때려주고 싶다. ㅋㅋ




생각만큼 안된다.


어른들은 자주 말씀하시곤 한다. "나이가 들면 몸이 고장 난 다고, 무릎도 허리도 다 아프다고..."

아직 그런 말씀들을 체감할 만큼의 나이도, 평소 몸을 소홀하게 관리하지도 않았다.


과거에 약 10년 남짓 담배를 피웠었다. 매일 한 갑 반정도를 피워댓으니 지금의 폐가 선홍빛을 아닐 듯싶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 맛이 너무 없어서 한 달을 끊었더랬다. 그리고 다시 피웠는데, 예전의 그 맛을 완전히 잃고는 담배에서 손을 떼었다. 주변에선 "대단하다고"들 했지만 굳이 피워댈 이유가 없었던 듯싶고, 아마도 그리 심각한 수준의 중독이나 일상화된 습관 상태는 아니었었나 보다. 


서른 즈음부터 꾸준하게 하루에 조금이라도 운동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냥 이런 루틴이 좋다.

뭔가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주변에 아파서 짐이 되기 싫었고, 온갖 약들을 달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도 집착스럽게 나만의 관리를 하며 살아가나 보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다.

꽤나 불편할 한두 주를 보낼 생각에 잠시 짜증이 밀려든다. 


회사를 그만 다니면 나을까? 

회사에서 생긴 증상인데, 그만 두면 나을까 싶다.

알고 맞는 매는 좀 덜 아프다던데, 이건 매년 반복돼도 참 적응이 안 된다.


올해는 봄에 찾아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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