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물고기나 새떼가 집단 폐사했다는 뉴스는 종종 듣고 했는데, 지렁이는 의외였다.
한낮의 기온은 아직도 30도를 넘기에 주로 운동은 이른 아침과 저녁에 조깅으로 하고 있다.
늘 다니던 코스였고, 어제저녁만 해도 특이한 점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선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비가 온 후도 아닌데, 왜 나와서 떼죽음을 당하는지?
족히 수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수의 지렁이 사채로 지나는 길에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마비시키는 기분이 든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지렁이의 습성상 사는 곳에 습기가 많아져 호흡이 곤란해지면 이동을 한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입추가 지난 8월 중순이긴 하나 연일 불볕더위가 가시지 않아 여전히 무더운 기간인데 영 이상하다.
뭔가 부족하거나 필요에 의해 풀밭을 나오는 건 이해하겠는데, 하늘엔 햇볕이 쨍쨍하고, 아스콘으로 만들어진 길은 한낮의 열기가 식었음에도 신발 바닥에 끈적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이런 땡볕에 멀리도 이동하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본능을 따르는 건 아닌가 깊다.
이런 광경이 처음이기도 했거니와 특이한 점이 여럿 있다.
첫째, 문제의 구간은 매일 조깅하는 길에 중간쯤에 해당하는 곳인데, 약 80미터 정도의 길에 한정하여 지렁이 떼가 죽음을 당했다. 당한 건지 자청해서 선택한 것인지 조차 구분이 안 되는 수준이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강한 햇볕에 말라죽은 것인데, 참 안타까우면서도 이상하다. 왜 여기서만 그럴까? 그 구간 앞뒤로 환경이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던데... 이해가 안 간다.
이 길은 도로 옆으로 자전거 길을 별도로 낼 수 없어 인도 위에 자전거 길 페이트가 약 2킬로미터 정도 같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그 구간 중 중간 정도인 여기만 이런 일이 발생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다. 가령 주변 건물들의 위치와 태양의 방향에 따른 조도 차이, 주변 가로수를 위시한 수풀과 흙의 차이 등인데, 그런 조건들만으로는 납득이 안 간다.
둘째, 며칠새 비가 왔거나 곧 비가 내릴 거 같지 않은 날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연일 한낮 기온이 35도 이상의 화창한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왜 이리 무리한 이동을 선택했을까이다.
마치 전쟁 영화에서 적의 매복을 모른 채 무작정 진격했다가 부대 전체가 전멸한 듯한 장면이다.
셋째,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지금도...
조깅을 하면 목격한 시간이 5시 반쯤인데..(전날 저녁 운동 시에는 분명 없었다.) 수풀 쪽에서 도로 방향으로 지금도 계속 기어 나오고 있다. 단체로 하는 나라 가기로 작전이라도 세운듯한 모양이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다.
사실 난 말라죽는 지렁이를 잘 보지 못한다. 그래도 자연의 법칙을 위배되는 짓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하나, 새끼 지렁이에 한해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종종 주변의 나뭇가지나 잎사귀를 이용해서 수풀로 옮겨주어 생을 연장시키곤 했다. 그리곤 다시 나오는지도 잠시 지켜보기도 한다.
이번의 경우에는 다 큰 성체나 작은 개체의 수가 족히 수천은 되어 보이기에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늘 저녁에 다시 이 길을 지나치겠지만, 아마도 더 많은 개체가 길바닥에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일은 한번뿐이길 바라본다.
이번 주 비소식이 있던데, 또 하나의 변수가 될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