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인가
의사 그만두고 과자 만든다고 하면 제일 먼저 듣는 질문은 ‘아깝지 않으세요?’ 이다.
나는 안 아까운데 하도 저 질문을 들으니 좀 더 아까워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대체 왜 다들 아까워하고 대체 왜 나는 아깝지 않은가에 대한 고찰을 좀 해 보려고 한다.
투자한 자원 대비 가져가는 이익이 적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으니 이참에 ROI 를 대충 셈해 보자면,
내가 의사가 되려고 투자한 자원은
1. 4년간의 학사과정
2. 학비
3. 공부하느라 한창 때 못 놀러다닌 기회비용
정도일 것이고,
반면 의사가 되어 득한 이익은
1. 인턴 1년 + 제약사 8년의 커리어
2. 사회적 지위
3. 1, 2에 따른 연봉
정도일 것이다.
4년의 시간과 학비를 들여 공부해서 근 10년 또래보다 고액의 연봉을 받아가며 잘 먹고 살았으니 충분히 제 값은 한 것 같은데 대다수의 의견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이런 단순비교로 가능한 계산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안정적인 고수익의 가능성을 포기한 데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 부분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나의 인생에서 안정성과 수익성은 타인 대비 그다지 높은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첫째로 흥미로운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내 성격이 있겠고, 둘째로 책임져야 할 피부양자가 없어 고정지출에 대한 부담도 적은 딩크 부부의 여유로움도 있을 것이다. (딸래미가 한 마리 있긴 한데 얘는 학원비, 교재비, 체험학습비가 안 들고 가끔 특식이나 먹여주면 행복해하는 아이이다.)
나는 제약 업계를 뜨면서 내킬 때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금전적 여유와 9-6의 편안함, 어느 정도 보장된 미래를 잃었지만 대신 내 손으로 아름답고 맛있고 특별한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와, 매일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얻는 신선함과, 수익 창출의 온전한 주체가 되는 굉장히 무섭고도 짜릿한 경험을 얻었다. 나에게는 이 정도면 등가교환이다.
다만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정 수입이나 노후 대책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부분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최대 고민이긴 하다. 하지만 일단은, 매콤달콤한 자영업자의 삶에 집중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