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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guerite Sep 28. 2023

제과 공부를 시작하다

취미가 본업이 되어버리는 과정에 대하여

Covid19으로 인하여 전면 재택이 시행되고 3-4개월쯤 지나자 심심함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우선 내가 회사생활 내내 그토록 부인하고 싶어 했던 점을 잠깐 짚고 넘어가 보자면, 재택근무를 해도 할 일은 하지만, 아무래도 할 일‘만’ 하게 된다. 엉덩이가 회사 의자에 닿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모니터에 눈을 두게 되어 있고, 그러다 보면 이메일이라도 하나 더 읽고 문서작업이라도 하나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반면에 재택근무 도입 당시 내가 살던 오피스텔에는 변변한 사무용 가구도 갖추어지지 않았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업무를 보던 식탁 겸 책상에서 침대까지의 거리는 매혹적으로 가까웠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내 직무의 30%가량은 대면업무였는데, 이 부분이 갑자기 배제되어 버리니 실제로 업무의 절대량도 줄어들어 버렸다. (물론 팬데믹이 장기화되며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정상화 되기는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제법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서 날리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것이 홈베이킹이었다. 마침 외국 살 때 먹던 찐득 꾸덕한 브라우니랑 초코칩 쿠키가 그립던 차라 미국 유튜버들 레시피를 뒤져 가며 토스터오븐으로 사부작대기 시작했고, 이것이 곧 파운드케이크, 스콘 등으로 이어졌다. 타르트까지 손대기 시작했을 때 ‘일단 등록해’ 병이 도져 버렸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세상엔 몸으로 부딪쳐야 해결되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자주 벽에 막히게 되는데, 이러면 또 반사적으로 나보다 그 문제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에게 가서 배울 궁리를 한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와 이에 대해 고찰을 해 본 적이 있는데, 모든 상황의 돌파구를 수학에서 찾으려는 것이 학력 덕에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큰 굴곡 없이 살아온 이들, 또는 그러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이들의 특징이 아닐까 추측했었다. 거기다 나는 반복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지혜를 얻기에는 성격이 너무나도 급하다. 베이킹도 마찬가지로, 독학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자 덜컥 제과학교 주말반에 등록해 버렸다.


기본기를 대충 떼고 나서도 온갖 클래스, 세미나, 온라인 강의를 넘나들며 과자 만들기에 빠져들었다. 퇴사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도 과자였다. 지금은 전문반 개강을 기다리며 공방을 하나 얻어 이것저것 만들고 먹으며 지내고 있는데, 레시피가 잘 만져지지 않을 때는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또 당이 충전되면 복잡하게 꼬인 머릿속이 사르르 풀리게 마련이니.


다만 취미베이킹의 짜릿함에 빠져 섣불리 전업을 결정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하고 있다. 소소하게 과자 구울 때나 예술이지, 사실 수익창출을 위한 대량생산을 하기 시작하면 노동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한 나의 경험은 전무하기 때문에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과연 지금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지를 서서히 가늠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호기심과 창작욕구, 식탐까지 한 방에 해결해 주는 놀잇거리를 찾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당분간 느긋하게 늘어져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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