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만 쉽지 않은
홈베이킹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한 번쯤 마들렌 망쳐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풀지 않거나, 너무 부풀어 화산처럼 터지거나, 퍼져서 틀 옆으로 새 나오거나, 구음색이 나지 않거나, 속이 떡지거나, 퍽퍽해지거나, 뭐 아무튼 과자 구우며 일어날 수 있는 참사란 참사는 다 모아둔 듯한 과자가 바로 마들렌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다들 과자 입문을 마들렌으로 하는 것일까? (심지어 제과학교 첫 수업도 마들렌이었다.) 레시피만 보면 간단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달걀과 설탕을 섞고 가루류를 체 쳐 넣어 섞은 다음 녹인 버터를 넣고 섞어주면 끝이다. 계량부터 굽기까지 2-30분이면 끝이 난다. 이 간단한 레시피 어디에 저 많은 잠재적 위험 요소들이 숨어있는지 모를 일이다.
내 첫 마들렌은 멋진 성공이었다. 유튜브 레시피를 따라 조그만 오븐에 6구짜리 틀로 구워 본 마들렌은 오동통하고 촉촉하니 맛있고 예뻤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만들어 보았을 때 문제없이 잘 나왔었기 때문에 마들렌은 정말 쉬운 과자인 줄 알았다. 그러다 한 번은 친구의 부탁으로 마들렌을 좀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 적이 있다. 스탠드믹서로 한 번에 돌려 휴지 시키면 될 것 같아서 별생각 없이 늘 만들던 레시피대로 했는데, 다음날 냉장고에서 꺼내보니 반죽이 유화가 덜 되어 와장창 분리가 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실수 없이 잘해서 결과물이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 반죽마다 융통성의 정도가 다 다른데, 소량으로 만들 때는 마들렌 반죽이 나의 자잘한 잘못들을 덮어줄 정도의 아량을 베풀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다 생산량이 늘어나니 수용범위의 임계점을 넘어버린 모양이다.
요즘은 마들렌을 만들 때 계란을 잘 풀고 난 뒤 설탕을 넣고 온도를 체크하여 너무 낮으면 중탕으로 24-5°C까지 올린다. 나는 팩전란이 아닌 생달걀을 쓰기 때문에 알끈을 풀어주기 위해 자잘한 거품이 올라올 때까지만 휘핑을 쳐 준다. 그 뒤에 곱게 체 친 가루류를 넣고 다시 잘 섞은 뒤, 글루텐이 볼 벽에 잡히는 것이 살짝 보일 때까지 중-고속으로 휘핑한다. 그리고 60°C 전후의 녹인 버터를 조금씩 나누어 섞는다. (소량 반죽할 때는 45°C 전후를 추천한다!) 이런 자잘한 디테일들을 요약해 놓으면 ‘계란 - 설탕 - 가루 - 버터’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동기 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대체 마들렌따리 만드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게 맞는 건가’ 하고 울분을 토한 적이 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저 중에 한 스텝이라도 놓치면 결과물에서 차이가 난다. 같은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마들렌을 만들 때는 언제나 약간의 긴장이 함께한다. 기교도 필요치 않고 품도 많이 들지 않는 마들렌이 제과의 간판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쉽다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만의 무게감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