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에 대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는 레몬머랭타르트다.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처음 시도해 본 타르트도 레몬머랭 타르트였다. 그때는 타르트지를 틀에 제대로 얹는 방법도, 레몬크림을 덩어리 지지 않게 끓이는 법도 몰라서 거의 빚다시피 구워낸 타르트지에 체에 걸러 덩어리를 없앤 레몬크림을 넣어 굳히고 흰자에 설탕을 넣어 올린 프렌치머랭을 스푼으로 대충 올려 완성했었더랬다.
지금은 실력도 많이 좋아지고 입맛도 고급화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는 레몬머랭타르트다.
레몬머랭타르트는 ‘적당히’의 디저트다. 적당히 새콤하고 적당히 되직한 레몬크림에 적당히 달고 적당히 퐁신하되 적당히 단단한 머랭이 올라가야 균형이 맞는다.
레몬크림은 레몬퓌레에 계란, 설탕을 섞어 뭉근히 덩어리 지기 직전까지 익혀 만든다. 레시피북에는 80°C 정도로 익히라고 나와 있지만, 한 번 만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 온도 재겠다고 잠깐 눈 뗀 사이에 달콤한 계란찜이 되어버린 레몬크림을 보며 느끼는 참담함을…! 온도계 없이 레몬크림의 질감을 확인할 때 쓰는 제과 용어가 있다. ‘À la nappe’ 라는 말인데, 테이블보를 뜻하는 프랑스어 ‘nappe’ 에서 유래된 말로써, 스푼을 소스에 담갔을 때 테이블보처럼 얇게 스푼을 감싼 채로 유지되는 정도의 농도를 가리킨다.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말로 케이크 등의 표면을 코팅하는 글레이즈를 뜻하는 ‘nappage’ 가 있다.
홈베이커들이 본격적으로 제과를 배우기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가 모든 것이 정량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요리할 때 소금 한 꼬집, 간장 종이컵 반컵 하다가 갑자기 시럽을 118°C 까지 끓이고 펙틴 중량을 미세저울로 재야 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 십중팔구 망한다. 그 와중에 허용되는 몇 안 되는 눈대중요법 중 하나가 저 ‘à la nappe’ 가 아닐까 싶다. 레몬크림을 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완전히 물은 아닌가…? 싶을 때가 오는데, 그때부터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 살짝 되직한가 싶을 때 젓던 주걱을 들어 가운데에 손가락으로 죽 금을 그었을 때 경계가 유지되는 그 순간 불에서 떼고 식혀야 한다. 잘만 끓이면 체에 거르거나 갈아줄 필요도 없이 완벽하고 매끄러운 크림이 완성되는데, 그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레몬머랭타르트에 올라가는 머랭은 보통 고정력이 좋은 가열머랭을 많이 사용한다. 나는 이탈리안 머랭을 선호하는데, 다른 머랭보다 당도가 조금 더 높고 고정력이 좋으며 반짝반짝 매끄러워서 토핑으로 보기에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이탈리안 머랭은 뜨겁게 끓인 시럽을 조금씩 흘려 넣으면서 흰자를 휘핑하여 만드는데, 여기서도 또 눈대중요법이 중요하다. 너무 빨리 시럽을 넣으면 흰자가 녹아 곤죽이 되고, 너무 늦게 넣으면 온도가 내려가 흰자와 잘 섞이지 않는다. 드립커피 내릴 때보다도 신중하게 졸졸졸 부어 한껏 휘핑을 치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랭이 완성된다.
‘적당히’ 만든 레몬크림과 머랭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새콤달콤한 하모니를 나는 사랑한다. 적당히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의욕이 넘치면 무모해지고, 모자라면 무기력해진다. 배려가 넘치면 오지랖이고, 모자라면 삭막하다. 적당히 시큼하면서도 적당히 달달한 레몬머랭타르트는 내가 추구하는 인생과도 그렇게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