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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이누나 Apr 18. 2023

미술관 간편 사용법

어떻게 작품을 감상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는 당신에게

"정답은 없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 것이 좋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전 우선 '정답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싶다. 이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길거리를 가다가, 밥을 먹다가 정말 멋진 사람을 봤을 때 우리의 고개는 저절로 돌아간다. 가끔은 정말 맘에 드는 상대를 두고 '첫눈에 반한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멋진 대상을 봤을 때 자꾸만 생각나는 것.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잘 모르는 작가에 대한 미술작품 감상도 처음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아예 처음 보는 작가의 경우 리플릿의 텍스트를 관람 전부터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기보다는,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 대문짝만 하게 보이는 전시제목 정도만 살펴보고 바로 전시장에 들어가 본다. 들어가자마자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맞닥뜨렸을 때의 첫인상. 그 첫인상은 생각보다 내 취향을 많이 반영하는 것이자, 즉각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아주 유아적인 감상이라도 좋다. 색이 예쁘네, 알록달록하네, 어둡네 등 같이 아주 단순한 감상일지라도. 



그동안 미술감상이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감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내려놓고, 맘에 드는 이미지를 찾아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나는 멋진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다. 미술작품을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조금 더 마음에 드는 것, 즉 '취향'이 생기게 되는데, 이 취향에 대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감상이 폭을 넓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생활에는 볼수록 매력 있는 대상도 있지 않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을 첫인상으로만 하기에는 스스로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작품을 마주하다 보면 문득 궁금해질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은 무엇일까? 왜 이런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의 단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월텍스트(전시장 벽면에 쓰여있는 텍스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의 전시 기획의 추세는 월텍스트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가독성 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디자인적인 요소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 글 자체도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게, 또 간결하게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람자들이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을 것이 전시 기획자가 말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 중에 가장 핵심적인 말들이 월텍스트로 나온다는 점이다. 전시를 설명하기 위기 위한 최소한의 개입. 그것이 월텍스트인 것이다. 얼마나 중요하면 작품이 걸리는 벽면에다가 글씨를 적어 두었겠는가. 작품을 감상하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을 때 우선적으로 월텍스트를 가볍게 읽어본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023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전시에서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월텍스트를 배치한 구성이 인상 깊었다.



월텍스트 이외에도 관람객들의 편안한 감상을 위해 미술관은 다양한 편의사항들을 제공하고 있다. 도슨트 전시설명, 오디오 가이드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용어로, 소정의 지식을 갖춘 전시 해설사를 말한다. 관람객들은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전문 전시해설가의 설명을 통해 조금 더 편안하게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볼 수 있다. 



번외로 큐레이터와 도슨트를 혼동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큐레이터(학예연구사)는 전시기획자로 우리가 보는 전시를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전시의 개념을 담은 서문, 월텍스트 등 모든 콘텐츠들이 전시기획자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된다. 관람객들이 직접 만나게 되는 도슨트는 전시에 대한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대부분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로부터 교육을 받게 된다.) 전시를 설명하는 해설사인 점에서 큐레이터와 도슨트는 차이점이 있다. 도슨트뿐만 아니라 오디오가이드를 제공하는 미술관들도 많은데, 이런 오디오가이드에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전시 감상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술관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부분의 관람은 월텍스트를 충실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여기서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 처음에는 큰 뜻 없이 이미지 위주로 감상하다가 '어? 이거 매력 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 그림옆에 캡션(작품정보)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이게 몇 년도에 만들어진 작품이구나, 제목이 이렇게 되는구나. 신기하다.' 이런 호기심은 전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파악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확장되어 월텍스트를 읽어보거나, 오디오가이드를 따라 전시를 감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계속 관심이 가는 작가가 생기는 경우 도록을 찾아서 읽어보거나, 미술관 종사자이기 때문에 가끔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취미활동으로 세미나까지 가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부분은 '반복적인' 경험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번 전시장에 방문하는 것. 반복적인 경험은 확실히 시야를 넓어지게 만든다.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 어떤 재미있는 것이라도 '공부'부터 시작하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진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가볍게 보는 것에서 출발해서 파고드는 쪽으로 가야 더 재미있게 오랫동안 미술감상과 함께할 수 있다.



2023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 군자지향 전시 전경, 전시뿐만 아니라 전시관람을 도와주는 오디오 가이드도 참 좋았다. 귀가 아프지 않도록 골전도 이어폰까지 모두 무료대여



같은 날 참석했던 전시연계 세미나, 전시를 조금 다 다채롭게 들여다보는 방법.



관람객들에게 하나 다행인 점은 미술관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본다면 '어떤 시간과 공간에 흠뻑 빠져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와 작품과의 온전한 만남의 시간. 이 시간을 갖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며, 그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미술감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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