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별명이 필요한 모든 곳에 '밥이누나(bob2nuna)'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브런치는 물론이고, 자주 가는 스타벅스에 설정된 별명도, 인스타그램 아이디고 그렇고.
브런치를 처음 개설하면서 지난 2021년 1월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된 강아지 '김밥'이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쓴 글 목록에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무하다. 사진이 한 두장 등장한 게 전부였다. 글을 안 쓰려고 한 게 아니라 쓸 수가 없었다.
글을 못쓰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김밥이를 위한 글에는 어떤 말을 적어야 할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빈 모니터를 꿈뻑꿈뻑 바라본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많기도 하고, 평소 글을 엄청 빠르게 쓰는 스타일인데 이렇게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 경험은 거의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글이 안 써지니 강아지 사진을 좀 볼까? 핸드폰을 켜서 김밥이의 귀여운 사진들을 본다. 사진에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홀라당 까먹고 그냥 다음기회에 쓰기로 한다. 위 과정을 꽤 오랜 시간 반복하면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범죄도시3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이준혁 배우가 인상 깊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배우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던 터라, 평소 이준혁 배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비밀의 숲, 신과 함께에 나온 연기 잘하는 배우.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하지만 범죄도시3 주성철 역으로 나온 이준혁 배우는 연기뿐만 아니라 비주얼 적으로도 압도하는 부분이 있었다. 마동석 배우와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빌런의 모습이 극장밖을 나서서도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와 포털 검색창에 '이준혁'이라는 이름을 검색하게 되었다.
이름을 검색해 보니 출연작 등 여러 가지 정보 사이에 '안녕 팝콘'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발견하게 됐다. 아니 배우가 게임개발을 한단 말이야? 뭔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게임은 이준혁 배우가 키우던 반려견 '팝콘'이가 주인을 찾으러 떠나는 런게임이었다. 너무 바쁜 시기에 강아지와 이별을 하게 되고, 마음속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채 정신없이 살다가 게임을 통해 팝콘이에게 인사를 건네고자 한다는 말이 우연처럼 마음속에 남게 되었다. 본인이 게임 속 아트웍을 직접 그렸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김밥이는 심장병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됐다. 밥이가 아프기 전까지는 완전 개구쟁이 같은 성격에 누나를 닮아 먹성도 좋고, 어딘가 모르게 시크하기도 하면서, 달리기도 엄청 빨랐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밥이는 고작 7년 5개월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소형견, 특히 치와와 같은 경우에는 수명이 긴 편이라 적어도 15살까지는 살 줄 알았다. 내 생일이 1월 5일인데, 밥이는 4일 뒤인 1월 9일에 하늘의 별이 됐다. 밥이의 작은 심장은 너무 많이 아팠지만 내 생일을 함께하기 위해 조금 더 견뎌주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선물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 생일즈음엔 늘 작은 강아지 생각이 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김밥이와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영원은 무슨, 내 입장에서는 사뭇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이하게 됐다.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미술관으로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그랬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늘 내 생각만 하던 김밥이는 금요일 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덕분에 토요일, 일요일 펑펑 울기도 해 보았다.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두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이 났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어 다시 출근을 하게 됐고, 누군가에게는 고작 강아지 때문에 궁상을 떠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했다.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작지만 너무 큰 존재. 그런 김밥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걸 글로 풀어내고 싶어서 브런치까지 시작했는데 위에 설명한 이유로 빈 모니터와 사진만 구경하다 자꾸만 시간이 갔다. 브런치에는 정작 강아지에 대한 글은 한 글자도 쓰지도 못하고 맛집이나 다른 글들로 1만 조회수를 찍게 됐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하고 본 영화 범죄도시3, 검색창에서 발견한 이준혁 배우와 팝콘이 덕분에 꼭 글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겠다는 힌트를 얻게 됐다. 그날 검색창에 이름을 쳐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밥이누나'라는 별명만 남긴 채 제자리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게임 속 세상을 자유롭게 항해하는 팝콘이처럼, 밥이가 뭔가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임이 있는 표현방법을 찾다보니 결국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됐다. 글로 주저리주저리 담아보려고 노력 했을때는 그렇게 어려웠는데, 애니메니션의 스토리는 뚝딱 생각이 났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이 글에 이어지는 시리즈로 소상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치와와 강아지 김밥이의 모험을 담은 애니메니션은 말도 안 되는 우연에서부터 시작됐다. 범죄도시3-이준혁 배우-안녕 팝콘 게임으로 이어지는 우연의 세계가 나한테까지 닿을 것이라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늘 전하고 싶었던 김밥이에 대한 나의 마음, 이준혁 배우가 팝콘이를 사랑했던 마음의 파편, 검색창에 이름을 검색해보고 싶을 정도로 임팩트를 주었던 연기. 이 모든 우연들이 하나로 모여 나도 드디어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 애니메이션 보러가기
https://brunch.co.kr/@bob2nuna/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