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 보고 각자의 땅에 서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심연의 깊은 바다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끝 모를 좌절을 맛볼 수도 있을,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심연.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땅으로 있는 힘껏 건너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상대방의 땅으로 건너갈까 말까인데, 나도 모르게 내 것을 챙기다 보면 몸이 무거워져 상대방의 땅으로 건너갈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까지가 철학자 강신주 선생님이 장자철학을 이야기하며 말하는 사랑의 정의다.
사랑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려고 할 때면 늘 답답함을 느꼈다. 실체에 가깝게 설명하고 싶지만 그 존재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설명도 어딘가 명쾌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사랑의 정의에 대해 이토록 분명한 설명을 듣고 나니 마음 한편이 뻥 뚫린 느낌까지 들었다. 철학자의 생각에 힘을 얻어 지금까지 마음속에 간직한 내가 사랑하는 사랑의 의미를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두 남녀 사이에 '신뢰'라는 끈을 서로가 팽팽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 몸을 던져 한번에 건너오기보다는 어딘가에 걸쳐둔 신뢰라는 끈을 손에 꼭 쥐고 상대방의 땅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필수다. 모두 다 버리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손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무게에 내가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바로 바다로 빠져서 절대 다시 그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을 마치고 나서, 나에게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존재를 떠올려본다.
'우리의 관계에서 모든 결정은 네가 해, 나는 옆에서 이것저것 열심히 찾아볼게. 어차피 결정은 네가 원하는 데로 할 거지만 옆에서 열심히 (하는 척) 할게'
'나는 내가 주인공이 되기보다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것을 잘하는 것 같아. 어릴 때부터 그랬어 우리 가족이 어떤 일을 주도할 때면 옆에서 도와주는 것을 잘했어. 너한테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내가 가정주부가 돼도 괜찮아(웃음). 늘 응원할게'
'네가 기뻐하는 게 나도 좋아'
여기서 상대방이 나한테 한 말을 잘 생각해 보면 모두 자기 것을 기꺼이 내던진다는 말이 아닌가. 세상에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내 잘난 맛에 산다' 혹은 '관심종자'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나는 과연 얼마나 내려놓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나한테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분명히 맞는 것 같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이성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신뢰라는 끈을 붙잡은 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곳. 지금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