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사랑으로 견뎌내는 '육아' 자체가 마법일지도
어렸을 때도 결혼 후에도 여러 번의 이사를 했는데 유독 정이가고 좋은 느낌이 가득한 집들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그렇다. 늘 탁 트인 뷰의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미국에 와서 살게 된 이 아파트는 거실 창에 보이는 풍경이 참 예쁘다.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면 여러 모양의 지붕들과 저 멀리 구름이 걸터앉은 나지막한 산이 꼭 그림같이 느껴진다. 한국의 고층 아파트, 앞집뷰만 보다가 장난감같이 아기자기한 싱글하우스들과 창의 절반이 하늘로 채워져 있는 모습은 매일 봐도 새롭다. 딸과 함께 공주가 살 것 같은 집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작은 테라스에서 캠핑의자에 앉아 보랏빛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설거지하면서도 아이 분유를 먹이다가도 내다본 하늘은 너무 낭만적이어서 잊지 않으려 마음속에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새벽어둠 속 글 쓰다 한 번씩 창밖을 바라볼 때면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좋았다.
뷰 다음으로 이 집에서 행복했던 감각을 떠올려보았다. 바로 아기냄새. 그리웠던 이 냄새! 둘째가 태어나고 신생아 냄새를 맡으며 가물가물했던 첫째 태어났을 때의 장면까지도 선명해졌다. 아기가 커갈수록 시큼털털한 신생아향은 약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둘째를 폭 안으면 달콤하면서도 폭신한 냄새가 보드라운 볼과 함께 나를 감싼다. 팔이 저릿저릿 아픈데도 아이를 안고 코를 박는다. 침범벅이 된 아가의 입 주변까지도 사랑스럽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 누워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날 아이가 울며 보채면 몸을 일으키면서도 '휴.. 혼자 좀 놀지'라는 진심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한다. 의식적으로 나는 한숨 대신 다른 말로 바꿔 내뱉어 본다. ‘아~예쁘다~’라고. 이것은 마법의 말이다. '우리 아기 예뻐라'라고 내뱉는 순간 아기의 냄새가 다시 내 코에 싸악 들어온다. 그리고 힘들었던 감정은 신기하게 줄어든다. 마법의 말이 아니라 마법의 냄새인가도 싶다. 옅어져 가는 아기냄새가 아쉬운 만큼 더 많이 안아줘야지 생각한다.
일명 '눈치'도 감각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이 집에서 아주 중요한 감각을 담당한다. 한국에서 살던 집보다 작아진 공간에서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남편과 하루종일 같이 있노라면 센스 있는 눈치는 필수이다. 한 명이 집중해야 할 땐 자연스레 다른 한 명이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서로의 배려에 감사한다. 밥먹이기, 놀아주기, 기저귀갈기, 산책, 씻기기의 루틴이 착착 손발이 맞아가는 것을 보면 한 집에 사는 우리의 팀워크도 매직임이 분명하다.
우리 가족의 오감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싶다. 한번 더 웃고 편안한 집안 분위기를 만드는 것. 엄마, 아내로서 내가 부릴 수 있는 마법이다. 오늘도 우리 집의 온도는 ‘따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