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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 아빠 편

by 젤로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 후 줄곧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4킬로 미터 정도거리라 운동삼아 타고 다니기에 적합했다. 일반자전거가 아닌 경주용 사이클이었다. 핸들이 밑으로 굽은 노란색 경주용 자전거. 자전거는 학창 시절부터 운동 겸 취미로 틈만 나면 즐겨 탔었다. 어느 가을 공휴일에 수원을 지나 송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주변 구경도 하며 타고 쉬고 타고 쉬고 하다 보니 한나절이 걸려 꽤나 먼 거리까지 왔고 늦은 오후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였던 자전거 출퇴근 생활에 변수가 생겼다. 하나는 양복바지 허벅지 안쪽이 닳아 해진 것이다. 출퇴근 교통비 보다 양복 옷값 걱정을 하게 생겼다. 출퇴근은 운동복으로 하고 직장 가서 정장으로 갈아입으면 좋으련만 당시엔 그런 탈의공간이 없었다. 또 하나는 양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이 직장 동료들에게 안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마 갓 쓰고 한복에 자전거 탄 모양새였나 보다. 당시 1990년 초는 마이카 광풍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처음엔 주차장에 서너 대 정도였던 출근 차량이 두배로 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석 달 된 직원이 차를 뽑아 출근해서 모두 놀라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차를 새로 구입하면 ‘차 턱’이라고 전 직원에게 빵과 우유를 돌리던 문화도 있었다. 그런 사회분위기와 안 맞게 양복에 경주용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나를 보고 어느 날 동료 직원이 한마디 했다.

"이선생은 평생 차 못 살 거야 "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사는 곳, 타는 차 같은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평가받는다는 걸 느꼈다. 남 시선 개의치 않고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고 당시 수입에 비해 차는 과소비라고 느꼈기 때문에 차가 없는 게 문제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한번 생각해 봐야 했다.


양복바지와 남의 시선.


그로부터 일주일 후 바지가 해지지 않을 오토바이를 고려해 보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발로 속도를 조절하는 것과 손으로 조절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50cc 이상 고출력 오토바이는 면허도 필요하고 넘버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간편한 스쿠터로 결정했다. 자장면 배달 할 때 발판에 공간이 있어 배달통을 놓고 운행하던 그 스쿠터였다. 빨간색. 생애 첫 동력 이동 수단이었던 셈이다. 스쿠터는 가끔 가족의 이동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운행규정에 어긋난 것이었지만 당시는 단속이 별로 없었던 터라 헬멧도 없이 가족이 그 작은 오토 바이에 모두 타고 가까운 대공원에 놀러 가곤 했다. 앞 핸들과 의자사이 빈 공간에 어린 두 아이를 태우고 도로를 달리는 무모함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남들은 승용차로 가족나들이 할 때 스쿠터로 대신하다니..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자신의 가치관과 관점, 현실 관리가 그대로 가족의 미래를 결정한다. 좀 더 현실에 일찍 눈떠서 신도시 아파트 열풍에도 동참하고 차도 사서 가족을 좀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형편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있었기에 한 단계씩 여유로운 생활로 바뀌어 간 것도 있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된 생각을 오랜만에 끄집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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