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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우리의 시작

by 젤로

1. 언니 편

머뭇거림이나 약간의 불편함 없이 재밌기만 한 추억이 하나 있다. 엄마 아빠와 자동차가 아닌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시간이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다리를 발판에 올리고 타는 스쿠터였는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교통수단이 생긴 우리는 기존보다 반경을 넓혀 놀러 다녔다. 스쿠터를 탈 때 우리 가족에겐 고정 자리가 있었다. 아빠가 핸들을 잡았고 엄마는 맨 뒤 나는 엄마아빠 사이에 탔다. 그리고 어린 동생은 발판 쪽에 아빠의 다리 사이에 서서 네 가족이 한 번에 씽씽 달렸다. 사실 그 당시 스쿠터의 색은 어땠는지, 새것이었는지 낡은 중고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타본 첫 스쿠터는 다른 가족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고 가족 네 명이 좁은 공간에 딱 붙어 허그 속에 있는 듯한 온전함이 있었다. 바람을 느끼는 것이라고는 발을 세게 구르는 그네 정도였던 내게 스쿠터를 타고 달릴 때의 바람은 비교도 안되게 세서 배꼽까지 시원해 지는 것 같았다. 네 명이 함께 스쿠터를 타고 달렸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여러 기분들이 한 번에 채워진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기대하던 과천 어린이동물원에 아빠랑 스쿠터를 타고 간 적이 있다. 에어컨, 차양막도 없이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너무 덥고 땀도 흘러 힘든 날이었는데 차까지 빽빽하게 막혀 있었다. 이렇게 땡볕아래 멈춰 있다가는 안 그래도 까만 딸이 구워지겠다 싶으셨는지 아빠는 도로 차선 사이사이로 요리조리 앞지르는 얌체 운전을 시작하셨다. 게임에서 이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야호! 우리가 빠르다’ 소리쳤던 스릴도 기억도 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빠가 면허를 따고 첫 차 은색 포니가 우리 집에 왔고 스쿠터는 내 기억에서 잊혀 갔다. 십 대 시절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 나는 두 학번 선배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하루는 남자친구가 학교 중고게시판에서 싼 값에 구했다며 핑크색 스쿠터를 끌고 날 데리러 왔다. 우리는 이 스쿠터에 ‘뿌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뿌꾸는 헐값으로 데려온 것에 비해 아주 요긴하게 잘 쓰였다. 벼락치기 지각 대장인 나는 출석체크 직전 간당간당 하게 맞춰 강의실에 도착하곤 했다. 다니던 학교는 광역버스 정류장에서 강의실까지 걸어서 10~15분 정도 걸렸는데 나는 꼭 수업시작 5분 전 버스에서 내리는 날이 많았다. 거의 매일 남자친구는 버스 정류장 앞에 스쿠터로 대기하고 있다 3분 만에 강의실 앞에 내려 주었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학교 근처 과외 알바를 갈 때도 뿌꾸로 데려다주었다. 핑크색 스쿠터 뒤에 타고 달릴 때면 어린 시절 가족이 함께 달리던 기억이 떠오르며, 엄마아빠 옆에만 타던 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스쿠터 태워주는 남자를 만났나 싶었다. 이젠 남편과 뿌꾸를 추억한다. 나도 엄마아빠처럼 스쿠터로 시작을 했다.






2. 동생 편

귀엽게 생긴게 예쁘기도 예쁘고 자동차만큼 빠른 스쿠터를 난 3,4살 때 처음 탔다. 그것도 네 식구가 같이 탔다. 스쿠터 앞에 쪼그려 앉은 나, 아빠 운전, 언니는 가운데 그리고 맨 뒤에는 엄마 지켜줬다. 넷이 스쿠터를 타고 달렸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원했던 바람과 엄마가 사준 빨간색 점퍼도 생각난다. 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건 도착해서 내릴 때다. 스쿠터에서 내릴 때면 내가 꼭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떨어지면 큰일 난다고, 꽉 붙잡아야 한다고 몇 번을 당부하던 아빠의 말을 미션 수행하듯 클리어한 나 자신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스쿠터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어느 추운 날,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아빠랑 타고 가던 스쿠터가 넘어졌고 우리는 여기저기로 굴러갔다.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내 양 볼에 상처가 났다. 많이 놀라 울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는 다친 날 보며 다쳐도 어떻게 이렇게 연지 곤지에 상처가 났냐며 속상해했다. 상처가 다 낫고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 집엔 오토바이가 사라지고 차가 생겼다. 난 '우와!' 하며 폴짝폴짝 뛰었고 시승식을 해야 한다며 잔뜩 신난 네 식구가 다 같이 차에 올라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던 기억이 난다. 지붕 있는 스쿠터가 왔어도 좋았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자동차가 온 거다. 커다랗고 네모난 자동차가 너무 멋있고 믿음직스러웠다. 차 얘기를 하니 갑자기 아빠 몰래 차를 끌고 나갔던 엄마가 생각난다. 아빠 오늘 차 안 가져갔다며 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된 엄마가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었다. 백화점에 도착한 엄마는 쇼핑도 못 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더 이상 운전 못하겠다고 5살 난 딸에게 어떻게 하냐며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때 난 엄마가 울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때의 엄마는 20대. 완전 애기였다. 옛날 일들을 떠올리니 너무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면 바로 비트코인 1,000개 사야지. 그럼 아빠의 일기장들을 보내지 않아도 되겠지. 그래도 스쿠터는 다시 넷이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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