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불안을 주고 싶지 않았다. 워낙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였다. 잠을 잘 때도 어디를 가더라도 엄마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갔다. 학기 초에는 늘 울음과 함께 등원했다. 3월이 지나면 조금 괜찮아졌다. 커 가면서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이 증상은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시울을 붉혔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아프다고 하니 학교에 연락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부터 아이는 멀쩡해 보였다. 잘 웃었다. 아프냐고 물으면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에 보냈어야 하는 건데.' 그러기를 여러 번. 한 달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을 했기에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빌었다.
이번엔 달랐다. 토를 하는 증상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놀라서 병원에 가보면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토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는 없기에 하루 이틀을 더 쉬게 했다. 그러나 아침만 되면 토하는 증상은 아이를 다시 찾아왔다. 토한다고 매일 학교에 안 보낼 수는 없었다. 아프다고 하면 쉬라고 하니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을 굳게 먹었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픈 거 아니면 학교는 가야 해."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아침엔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는 수밖에 없었다. 담임 선생님과 통화한 결과 교실에 들어가면 언제 울었냐는 듯 잘 지낸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어떻게든 교실 안으로 들여보내기. 가기 싫다는 아이를 데리고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서럽게 울어댔고 그럴수록 마음을 다졌다. 오늘은 꼭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나 다리가 너무 아파서 못 걷겠어." 아이는 다른 증상을 댔다. 벤치에 앉더니 울면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 한다고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는 다른 때와 달리 단호했다. "아파서 못 움직여, 안 갈 거야." "아니, 가야 돼." 아이를 안다시피 들어 올렸다. 끌려가는 아이와 진을 빼는 나 사이엔 안 보이는 줄이 팽팽히 자리 잡았다.
여기서 지면 앞으로의 생활이 두려웠다. 아침마다 이럴 거 같은 예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아이를 겨우 올려보내며 애원에 협박에 갖은 애를 썼다. 안 가겠다는 아이의 단호함에 학교에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건 아닌 지하는 불안감도 몰려왔다. 아이를 밀어 넣고 계단 밑으로 내려왔다. 한숨도 잠시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데리고 가서 네 마음대로 하라고 악쓰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들여보내야 했다. 아이는 나약한 엄마의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아이를 벤치에 앉히고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단풍이 엄마예요. 지금 학교계단 밑인데 단풍이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어서요." "네 어머니, 지금 제가 나갈게요." 고마운 선생님은 나의 전화에 두 말없이 단풍이를 데리러 나왔다. 선생님이 들어가자고 하니 단풍이는 순한 양이 되어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뒤돌아 서자마자 서러운 눈물이 흘렀다. 화가 나서도 안쓰러워서도 아니었다. 한 없이 무능해 보이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아이가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도록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겁이 많다는 이유로 내게 너무 의존하게 만든 걸까.
집으로 가는 길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단풍이 어머님, 단풍이 교실 들어와서는 울지도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목이 메어서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눈엔 보였을 것이다. 어쩌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짠한 엄마의 모습을. 그 모습에 걱정 말라고 전화도 해주셨을 테지.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책하기 싫지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그게 엄마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거처럼. 한 참을 울고 생각한다. 아이가 돌아오면 혼내지 말고 잘 다녀왔다고 안아줘야겠다고. 그리고 어렸을 때 소심했던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학교 가기 싫어서 아픈 척했던 일. 학기 초마다 불안에 떨던 일. 그러면서도 다들 싫지만 참고 학교에 가고 회사도 가며 살아간다고.
단풍이는 오후엔 밝은 얼굴로 뛰어나왔다. 그 모습에 화를 낼 수가 없다. 내 얘기를 들려주며 내일은 울지 말고 학교에 가자며 새끼손가락을 건다. 아이는 "응 알았어, 나도 안 울고 싶은데 아침만 되면 눈물이 나와"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노력해 보자." 아이의 눈을 보며 다른 말은 아껴둔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는다. 화내지 않고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것만으로 내 불안의 반은 해결된 것만 같다.
단풍이는 아직도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주말이나 방학이 지나고 나면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친다. 나는 가볍고 별일 아니라는 듯 "그래도 가야 돼, 다 가기 싫어도 가"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휴일이 있는 날이면 두밤자고 학교 가야 돼 내일은 학교에 가야 돼하고 마음 준비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지자고, 내일은 조금 더 씩씩해지자고.
3학년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실랑이를 벌인다. 하지만 밤마다 스스로에게 중얼대는 아이를 본다.
"내일은 울지 말고 학교 가자, 가야 돼."
스스로 체념하는 법이든, 이겨내는 법이든 아이는 그렇게 또 성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힘듦을 이겨낸다. 아이가 노력하고 있기에 내 눈물과 고통에 의미가 생긴다.
3학년의 단풍이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쫑알쫑알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며 학교에 간다. 그런 아이가 기특해 미소 지어지는 날이 많아진다. 울지 않고 학교에 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엄마가 되어간다. 점수를 조금 못 받아와도 실수를 해도 다 괜찮다. 그저 울지 않고 학교에 가주는 것 그것만이 내가 바라는 일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무한도전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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