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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쌈장 Dec 06. 2023

코를 갈아 끼우고 싶었다 -4

수술하는 날

"빨리 수술하고 싶어. 코가 뚫리는 새로운 세상을 빨리 맛보고 싶어."


지인들이 걱정돼서 전화가 올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들과 한참 방학을 보내고 있어서 집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수술시간 보다 1시간 전에 도착한 나는 자연스럽게 옆건물 스타벅스로 향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 한 권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진료 때, 수술원장님이 수술 후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 혼자 호텔 들어가는 기분으로 들어갔다. 이 얼마만의 자유로움인가. 아이들 없이 하룻밤을 편하게 자보는 게 언제였지 하면서...

가방에는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 책 한 권, 다이어리, 펜, 칫솔, 치약, 수건, 클렌징등이 있었다. 수술이라곤 출산했을 때뿐이라 출산 후 추웠던 것을 기억해 수면양말도 챙겼다. 


입원실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코털 깎기였다. 난생처음 코털을 깎아봤다. 버튼을 누르고 요리조리 입을 움직이며 콧평수를 늘려 열심히 깎았다. 전동으로 슝슝 깎이는 소리와 함께 시원함을 느끼고는 하나 장만하고 싶어졌다. 코털이 삐져나올 때가 있었던 아빠 생각에 하나 사드릴까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고 수술대에 누웠다. 전신마취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르르 잠이 깊게 들었다. 깨어나보니 코에 솜이 꽉 막혀있었고 입으로만 숨을 쉴 수 있었다. 입이 점점 마르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몇 시간 후, 저녁으로 죽이 나오고 약을 먹으라 하신다. 죽을 한 두 숟가락 먹는데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고 헛구역질이 시작됐다. 이 기분은 마치 20대 때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한 다음 위액까지 토했던 그날의 느낌. 변기를 부여잡고 살려달라고 했던 그때가 떠오르며 몹시 괴로웠다.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했던 죽


간호사님은 땅이 꺼지게 큰 한숨과 함께 약은 먹어야 한다고 하셔서 억지로 물과 함께 마셨지만 이내 구토를 하고 반복이었다. 괜찮다 싶어 누우면 피가 콸콸 흘러 목으로 넘어가 잠이 자주 깼다. 코 하나 건드렸을 뿐인데 온몸이 고장 난 듯 아프다니.. 대수롭지 않게 말한 담당의사에게 속는 기분이었다. 가져온 책, 아메리카노가 웬 말이냐... 달콤한 꿈을 꾸며 잘 생각을 하고 왔다니... 


다음날, 아침 담당 원장님과 진찰 후, 최종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한숨도 못 자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아침 죽과 함께 약이 나오고.. 뜨기도 전에 메스꺼워 한 숟가락도 입에 넣지 못했다. 

또다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먹으려는데 또다시 구토 시작..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속으로 외치며 살려달라고 정말 힘들다고 말하고는 계속 구토를 해댔다. 

"왜 이러지? 이런 경우가 없는데?? 이상하다??" 

너무 무책임한 의사의 주둥이를 한대치고 싶었다. 이내 한다는 말이..

"퇴원해도 돼. 집에서 쉬어."


퇴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나 퇴원해도 되나.. 이대로 집에 가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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