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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쌈장 Dec 07. 2022

네가 이럴 줄은 몰랐다.

아들의 배신

학폭이 열릴뻔 했다. 젠장. 예전부터 그러진 않았는데.


아이는 본인의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우물거리면서 하고 싶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인이 놀고 있던 장난감을 뺏겨 항상 울음에 젖었다. 그리고 빼앗았던 아이에게는 절대로 양보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뒤끝 있는 그런 남자. 놀이터에서 놀다가 속상한 일이 생기면 냅다 주위를 달리는. 우는 것을 숨기는 아이였다. 예민 덩어리에 내성적인 아이이다. 매번 그 모습을 보니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서 괴로웠다. 내 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지 못했다. 왜 말을 하지 않냐고. 싫다고 말을 하라고. 말을. 다그치기만 했다. 


대담하고 용기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 같아 더 괴로웠는지 모른다. 아이는 속상할 때 집에서 연필과 색연필을 들고 뭐든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든, 글씨를 쓰는 것이든. 운동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샤부작 샤부작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이런 아이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인정하지 않고서야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몇 시간씩 앉아 레고를 끝까지 만드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대견하고 기특한 순간이 있었다. 친한 친구가 말하길, 남자애인데 어쩜 이렇게 커피숍에서 잘 앉아있는지 놀랍다고 할 정도였으니. 

사진출처 : 픽사 베이


등교 첫날, 떨리는 것 하나 없이 가방 메고 씩씩하게 교문에 들어갔다. 아는 친구 있나 두리번두리번거리며. 한 명 한 명 친구를 발견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도 잘 건넸다. 유치원 시절 예민 덩어리 아들을 인정하고 나니 아들이 어느새 한 뼘 성장해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 변화가 신기하고 감격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등교한 지 3주째 되던 날, 줌으로 첫 공개수업이 있다고 했다. 

“평소에 하던 데로 잘하고 와.”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아침인사를 하고 학교에 보냈다. 해맑고 순수하게 정말 하. 던. 데.로. 하던 아들의 모습. 그 모습을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토록 순하고 잘 앉아있던 아들이 수업시간에 자주 일어났다. 심지어 갑자기 일어나서 한 바퀴를 돌고 있다. 학교 선배 엄마들이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난장판이라고 했을 때에도 내 아이가 그럴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조차 못 했다. 책상에서 일어나 글씨를 쓰지를 않나, 앞으로 가서 지우개와 연필을 빌리 질 않나. 그 자리에 있는 듯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아뿔싸. 오늘 가방에 필통을 처음으로 넣지 않은 날이네. 하필 그날 빨간색 잠바를 입혀 보냈네. 젠장.  

사진출처 : 픽사 베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10명 남자아이들이 떼 지어 체험수업을 하게 되었다. 수업 후, 어느 한 명이 따돌림을 받아 무지 속상해한다고 전화가 왔다. 이런 적이 없던 아이인데 다른 엄마에게 전화까지 오니 무지 낯설었고 믿을 수가 없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입장이라니. 매일 울며 말도 못 한 아이가 이렇게 나에게 돌아오다니. 교회 친구들끼리는 안 그러는데 왜 이 무리가 모이면 이렇게 되느냐고. 뭐지. 도대체 이유가. 




말 그대로 부산하고 거친 남자아이. 그 자체였다. 이러한 낯선 아들의 행동은 괴로웠다. 아마도 아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러한 행동들이 나 자신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어려운 자식이지만 소중한 선물이며 인간적인 성장을 촉진하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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