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크리스마스이브날. 어느 때와 다르게 손을 꼭 잡으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엄마가 물었다. 달콤하고 따뜻한 목소리의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매일 일에 치여 사셔서 극도로 피곤했음에도 이날만큼은 이벤트를 준비해주신 게 틀림없다. 아주 어렸을 때 일인데도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한지로 붙여진 여닫이 문이 있고 앞에 마당이 있는 옛날 집.
대문에서 열 발자국 정도 걸으면 도착했던 마루 위.
그곳에 케이크가 있을지 조마조마하며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서의 엄마와 나. 둘만 있는 그 공간이. 나에게 집중되는 그 시간이. 만족스럽고 평화로웠다.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던 달콤한 순간보다 엄마와 손잡고 대문을 열었을 때가 더 좋았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한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그 잠깐을.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자식이 필요할 때 경제적으로 딱. 뒷받침해줄 수 있는 부모가 최고라고 믿으셨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주말 부부를 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너는 알아서 다 컸어. 너는 힘든 것도 말 안 했어.
아니. 나 사실 안절부절못하고 외로웠다.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다.
엄마가 일이 있어 늦은 깜깜한 밤. (아빠는 주말부부라 당연히 없고) 무서웠다. 불을 다 켜놓은 상태로 혼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밥도 혼자 차려서 먹다가 냄비를 태워먹기도 했다.
음료수가 갑자기 마시고 싶을 때에는 나가기가 무서워 망설이다 플래시를 들고 슈퍼까지 모험을 떠났던 기억이 있다. 엄마한테 혼난 뒤에는 빨간색 보따리 한 짐이고 시골쥐처럼 집을 나가기도 했다. (대문 앞까지만)
흔하디 흔한 케이크. 요즘 일상에는 특별한 일 아니어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조각 케이크를 먹는 게 디저트 코스니까. 생크림 케이크를 볼 때면 마당 위에 있던 내 생애 첫 케이크가 떠오른다.
당근케이크, 레인보우 케이크, 레드벨벳 케이크 참 종류도 다양하지만 우유빛깔처럼 뽀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날 덕분인 것 같다. 심플한 비주얼도 맘에 쏙 든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SNS에 크리스마스 풍경이 화려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둘러 쌓인 장식들이 아름답고 황홀하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며 크리스마스 날을 기다린다. 공짜 선물, 공짜 상품이라고 1년 중 한 번밖에 없는 이 날을 목 빠지게 기다린다.
"엄마는 갖고 싶은 게 뭐야?" 아들이 물었다.
금목걸이. 팔찌. 부츠. 작은 검정 가방도 필요하고. 음. 점퍼?라고 하기엔 좀 속물 같아 보여서. 뭘 받았을 때 기분 좋았지. 잠깐 생각하다가
"엄마는 생크림 케이크."
"엄마, 내가 산타할아버지한테 엄마 것도 특별히 부탁해볼게." 희망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한다.
"고.. 마.. 워"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도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쓰디쓴 가루 맛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달콤한 솜사탕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