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쌈장 Dec 21. 2022

크리스마스와 제사

크리스마스 다음날 제사 실화냐.

"어머니, 저도 집에서는 귀한 자식이에요."



"월요일, 제사다."

"어. 엄마! 일 끝나고 갈게요. 나만 가면 되지?"

"아니. 다 같이 와야지."

"어.. 알았어.."


신랑과 어머님의 들려오는 전화. 아우. 짜증 나. 더 이상 말을 못 하는 신랑도 한몫했다.

왜 알지도 못하는 신랑의 할머니 제사를 다 함께 가야 하는 거지. 우리 할머니 제사도 못 가는데.

갓난 쟁이 아기가 있으니 좀 봐주시면 안 되나. 시간도 굳이 늦은 밤이어야 하는 건지.






쌀쌀한 겨울.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면 빼먹지 않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

크리스마스날도 아니고. 이브도 아니라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부담스러워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날 먹으면 곧잘 체한다. 10년이 넘었는데도 적응이 안 된다.  고구마 먹은 것 같은 이 답답함.



처음 결혼했을 때에는 신랑 가족의 문화이니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남자이고 그런 문화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해 먹는 음식도 의미가 있었다. (꼭 뭔가를 시키려는 간절한 눈빛은 불편했지만) 가족의 꽉 찬 그런 평화로운 느낌.






문 조금 열어놓으면 조상님이 들어오실까. 얼마큼 드시고 가실까.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래서 우리는 조상님 덕을 조금 본 걸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면 큰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집안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매번 해외로 떠난다던데.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제사는 오래도록 계승되어온 전통이다.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면 그냥 지내면 된다.

불자는 부처님께, 기독교는 예수님께, 유교는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까.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몸이 건강하고 집안일을 할 수 있을 때에 좋은 것이지, 몸이 성치 않은 아기 엄마로서는 납득이 안 되는 시점이다. 아이 둘을 낳으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곧 죽겠는데 나물 다섯 가지, 꼬치전, 표고버섯전, 호박전, 갖가지 종류의 전들은 다 부치고, 닭고기 삶아, 미역국 무우국 끓여. 꼬막 삶고 생선 굽고.

이 정도 하면 절반 정도 완성.


가족 한번 더 만났다가는 내가 저 세상으로 갈판인데. 이게 더 이상 좋은 일인 건가.

누굴 위해 여기 앉아있고. 무엇을 위해 먹고 사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혹시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신랑이 불효한 것 같아 힘들다 라는 이야기를 할 것만 같아서.

그 이야기가 나에게 굉장히 불편하게 들릴 것 같아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신랑 가족 문화를 고수하자 생각했다. 그래, 내가 너도 고쳐쓰기 힘든데 어찌 가족 전체를 바꾸겠어. 40년 넘게 제사 지낸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 틀을 깨기란 힘든거겠지.


사진출처 : 픽사 베이


비록 내 새끼 손가락이 휘기 시작하고. 엄지 손가락 마디가 아프기 시작하더라도, 암이 걸리지 않은 이상 제사는 계속 진행되겠지만. 승모근이 위로 솟아오르는 내 모습을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형님 없는 집에서 아기 둘러업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 자체가 불만 투성이 가득하다.




오래전부터 전통으로 지켜왔던 종교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의지나 선택의 여지라고는 없는 제사는 모두에게 짐이 된다. 아마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장남은 결혼대상에서 제외하는 여성도 있을 수 있겠다.

할 수 있으면 제사를 하는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못한다고 하면 된다.


다음 세대에는 제사가 부디 사라지길 바라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가의 이전글 싸워야 사는 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