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과 비예보로 어린이날 계획되었던 가족캠핑이 취소되었다. 어린이는 아침부터 입이 댓 발이 나왔다. 캠핑 못 가는 대신 캠핑비용의 일부로 게임아이템을 사달라는, 나름 머리를 쓴 협상을 시도했다가 부모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 부목을 한 다리로 쿵쾅거리면서 집안을 돌아다니다 침대에 드러누워 발차기를 시전 한다. 온몸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중이다. 준비해 둔 편지와 선물을 주었다. 평소에는 선물 축에도 못 들었던 생필품인 샴푸, 바디워시등이다. 인형목욕용 물비누도 있다.
강아지인형을 좋아하는 아이는 목욕할 때마다 털 달린 것들을 몇 마리씩 씻기느라 샴푸겸용 바디워시를 금방 다 써버린다. 취향은 존중한다. 다만, 워시 떨어진 지 두 달이 넘도록 제품을 안 사주었다. 불평 없이 비누로 씻고, 털뭉치들도 씻기고 있었다. 선물을 보고 안기는 것을 보니 아쉽긴 했나 보다. 결핍이 유일한 결핍인 세대라 <결핍체험선물>도 가끔씩 괜찮은 것 같다.
'어린이날 선물로 뭐 받고 싶냐'라고 묻는 이모에게 '닌텐도를 사달라'라고 했단다. 첫사랑 조카가 다리가 아프니 마음이 아픈 작은딸이 '닌텐도 사주면 안 되냐'라고 나한테 허락을 구한다. '절대 안 된다'라고 못을 박았다. 2년 전 가지고 싶다고 조르길래 닌텐도를 사주었다가 전혀 안 해서 당근을 한 전적이 있다. 아이에게 '왜 닌텐도가 가지고 싶냐'고 물었다. 친구 '누구도 하고 누구도 하니까 나도 하고 싶다.'라는 대답이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뭐든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모가 너를 사랑하지만 고가의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실례라는 것도 말해주었다.
이모에게 말만 하면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다가 할머니에게 걸려 원천봉쇄 당한 데다, 기다리던 캠핑도 못 가게 되자 집안에 아이의 웃음과 노랫소리가 사라졌다. 딸이 귓속말로 '친구전화가 왔는데 닌텐도를 줄 테니 가지고 가라' 해서 다녀오겠다고 한다. 아이의 '닌텐도타령'이 온동네방네 소문이 난 모양이다. 부모가 나갈 준비를 하니 아이가 '어디 가냐'라고 묻는다. 사위가 '어린이날이라 너 책 사러 나간다'라고 한다. 아이는 얼굴의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부모를 따라가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상심한 아이의 얼굴을 본 딸이 '닌텐도 사러 간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꽃 같은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아이가 노래소리와 함께 닌텐도를 가지고 들어왔다. 여러 가지 칩이 많다. 동물의 숲을 했다. 나뭇가지를 주워 '엉성한 낚싯대'를 만들어 물고기를 낚는다. 화면의 '생물도감'을 클릭하면 잡은 물고기정보가 나온다. 댄스대결도 했다. 땀이 난다. 아이는 다리가 아프고 나는 팔이 아프다.
아이의 친구가 놀러 와 함께 닌텐도를 했다. 저녁밥을 먹이고 나니 역시나 '파자마파티'타령이 나온다. 내일은 병원 갈 준비 해야 하고 'PCR'도 해야 한다. 안된다고 잘랐다. '그럼 몇 시까지 놀 수 있냐'라고 물어서 '최대한 늦게 놀다 헤어지라'라고 했는데 밤 10시다. '너무 늦으니 그냥 자고 가라'라고 했다. 환호를 지른다. 두 아이는 성격상 다른 면이 분명히 있는데, 케미스트리가 좋아 만난 지 4년이 넘었는데 작은 다툼 한 번 없이 잘 지낸다. 두 어린이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잠자리에서 놀다가 김밥 먹고 과일 먹고 옥수수 먹고 지금까지 놀고 있다. 11번째 어린이날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