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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16. 2023

아이의 수술

전화위복

"할머니 요즘은 왜 글 안 써?" 아이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브런치작가가 된 이유가 글 쓰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어서였다.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피드백을 해주는 아이를 위하여 글을 써야 한다. 아이가 수술을 해야 할 만큼 나빠있었는데 안일했다는 자책과 칼을 대기 전 비수술을 더 알아보아야 했다는 후회가 함께 나를 괴롭혔다. 좀처럼 구겨진 마음을 펴기가 힘이 들어 아이 보살피는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수술 하루 전에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하기 전날 pcr검사를 받았다. 걱정은 목감기가 며칠째 낫지 않은  아이의 엄마였다. 입원날이 일요일이라 사위는 '사회인야구단' 다녀와서 병원 가자고 아이에게 약속하고 일찍 나갔다. 아이와 내게 음성문자가 왔다. 걱정했던 딸도 음성이다.


 야구장에 가있던 사위에게서 "나 양성 이래"라는 문자가 왔다. 미친 전날밤까지 아빠에게 매달려 안기고 업혀 놀던 아이가 걱정이다. 병원에 전화를 해 전후사정을 말했다. 증상이 없으면 입원해도 된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는 마음을 다스릴밖에. 가는 곳이 병원이니 아파도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병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감기 걸린 딸은 입원병동 간호사실 앞에서 돌아갔다. 병실에 수술할 아이와 할머니만 들여보낸 딸은 집에도 못 가고 1층에서 울고 있다. "빨리 집 가서 쉬어" 문자를 몇 통째 보냈다. 딸은 퇴근이 늦다. 야근도 잦고 해외출장도 자주 다닌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품에서 키우니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걱정이 되었다. 십 년 전에도 입소문이 나있던 '이임숙' 선생님께 '가족심리상담'을 의뢰했다. '아이와 엄마의 애착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 딸은 엄청 분노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문제를 만들어내는 상담사는 신뢰할 수 없다고 화를 냈다. 지랄


"리나는 열 달 동안 누구 뱃속에서 있다가 나왔어?" "엄마" "리나는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쁘고 똑똑할까?" "엄마 닮아서" 이런 말들을 매일 아이 했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었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커리어를 가지게 되어 할머니에게는 멋진 딸이고 리나의 훌륭한 엄마라고 수없이 말해주었다. 자라면서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인실이 배정되었다. 우리뿐이라 넓고 밝은 창가자리로 정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맞은편 병상에는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다. 금세 5인실이 다 찼다.


아이는 오늘밤 12시부터 내일 수술시간까지 금식이다. 수술시간도 유동적이다. 앞시간에 네 살 아기와 또 한 명의 아이의 수술이 잡혀있어,  오후 2시쯤으로 알고 있으라고 한다. 맞은편 병상, 옆 병상에 오신 간호사선생님의 말이 일부러 듣지 않아도 들린다. 소아 병동이라 그럴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뼈수술, 고관절수술, 심장수술 단어하나하나에 기도하는 심정이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의 얼굴은 하나같이 선량하고 온화한  말씨를 쓴다.


항생제반응검사를 시작으로 채혈을 한다. mri는 새벽시간에 차례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아이도 나도 잠이 오지 않는다. 겨우 다독여 아이를 재웠는데 혈압을 재러 왔다. "방금 겨우 잠들었어요. 급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시면 안 될까요?" "네 그럼 아침에 잴게요."


새벽 3시 반에 mri 검사 가자고 데리러 왔다. mri는 아이보다 오히려 내가 힘들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이는  순순히 기계 안에 누워 준비한다. 10분쯤 지났을까 아이가 자꾸 내 손에 뭔가를 적는다. '다리를 움직이면 다시 찍어야 하니까 움직이지 말라'라고 당부해 놓으니 안 움직이려고 최선을 다해 손가락하나만 움직이는데 당최 알아볼 수가 없다. "리나야 지금 나가면 다시 찍어야 해 조금만 참자" 소리를 질러도 기계소리와 아이귀에 씌운 헤드셋 때문에 안 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다시 아이가 손에다 '쉬'라고 쓰는 것 같다. 자다 바로 온터라 미처 화장실을 못 들렀다. 도저히 못 참을 정도니 아이가 신호를 보내는 것일 게다. 운전실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문이 열리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신다. "아이가 화장실이 급해서요. 중단하면 다시 해야 하나요?" "그건 아니고 시간은 조금 더 걸립니다." 기계를 멈추고 화장실 다녀 올동안 기다려주시고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정말 감사하다.


mri를 마치고 돌아왔다. 다행히 아이는 침대에 눕자 바로 잠이 든다. 오전에 링거를 꽂았다. 이제 수술에 필요한 모든 약은 링거줄을 통해 아이몸으로 들어갈 것이다. 오후 2시쯤 예상하던 수술이 11시로 당겨졌다. 앞의 수술이 빨리 끝났다고 한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마취과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이 나오셔서 아이와 인사하고 수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묻는 말에 의젓하게 대답하고 아프지 않냐고 묻기도 하던 아이가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눈물을 흘렸다. 아직도 그 날일이 꿈결 같다. 아이의 갸녀린 다리를 다섯 군데를 뚫었다.  연골봉합을 한다고 했으니 결국 절제했다.


수술대기실

수술은 한 시간 십 분 여가 걸렸다. 한 시간이 지나자 딸과 나는 수술대기실에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회복실에서도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아직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로 다리의 통증을 호소했다. 입원병실 앞에 내놓았던 침대에 아이를 옮겨주셔서 들어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이가 쓰던 침대가 아니다. 높고 가드가 단단한  유아용 침대다. 다리가 아픈데 침대까지 높아서 화장실 가기가 힘이 든다. 병실바깥을 둘러보았다. 수술 전 침대에 누워서 침대헤드를 올렸다 내렸다 신이 나서 조작하던 아이의 침대가 바로 앞에 있다. 신청하고 기다려서야 원래 침대로 옮겼다.


다음날 퇴원을 했다. 집에는 코로나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뼈에 좋다는 사골을 고아 먹이고 부은 다리에 얼음찜질을 열심히 했다. 결석한 지 일주일 만에 등교를 시작했다. 학급친구들이 보내온 응원편지를 읽고 감격한 아이는 친구들에게 줄 감사편지와 과자를 포장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이주일이 지나면서 재활을 시작했다. 아파서 우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정신이 혼미해 결제할 때 다른 카드를 쓴 것을 아예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다. 일주일에 세 번 9번 재활을 받고 아이는 뛰기 시작했다. 체육시간에 공도 찼다고 했다. 빠른 회복에 재활운동을 해주시는 도수선생님도 놀라셨다.


등교를 하던 아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돌아왔다. 공을 찬 게 이유라고 생각해서 병원을 갔다.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아이를 만져주신 도수선생님께서 나으면서 나오는 반응이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최고의 의료진에게 수술받았고 신의 손을 가지신 도수선생님께 재활을 받고 있다.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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