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커다란 박스를 소리 나게 탁 내려놓았다. 놀랍게도 그 안에 든 게 다 진짜 바나나였다. 바나나 한 손은 구경하기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아니, 바나나가 여러 송이가 달린 게 완전체라는 걸 몰랐을 수도 있다. 한송이에 삼, 사천 원하는 바나나는 많이 아플 때나, 어쩌다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 결혼하고 임신을 하자 입덧부터 찾아왔다. 원체 입이 짧은 나는 도대체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바나나 외에는. 친정에 갈 때마다드문드문 하나씩 먹는 바나나로는 속이 달래지지가 않았다.
어쩌면 지독한 입덧이 시어머니 덕분인 것도 같았다. 종가인 시댁은 대소사로 갈 일이 자주 생겼다.시어머니는 삼시 세끼를 녹색채소에 쓱쓱 비벼 드시는 분이셨다. 늘 채소가 쌓인 주방에서 밥을 먹는 게 힘들었다. 임신기간 내내 야채만 보면 구토가 나왔다. 아이 낳고 몇 년이 지나도 녹색만 보면 비위가 뒤집혔다.
밥을 통 못 먹고 바나나만 먹고 싶다는 소리에 결국 엄마가 바나나를 박스채 사 오신 것이다.
술을 사랑하는 남편은 늘 취해서 들어왔다. 밤 12시가 귀가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문을 여는 버스종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내밀었다. "자 우리 마누라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나는 태어나 아이스크림을 단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이 인간은 그런 말을 왜 맘대로 지어내는 건지 모르겠다. 술냄새를 풍기며 웃는 얼굴에 더 화가 났다. 신혼집은 가까이 가게도 하나 없는 곳이었다. 과일을 못 사면 복숭아통조림이라도 하나 사다 달란 말은 영락없이 "자 우리 마누라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으로 되돌아왔다.
익은 바나나를 좋아하던 입맛이 변했다. 지금은 껍질에 녹색이 남아있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덜 익은 싱싱한 바나나가 좋다. 밥도 진밥은 싫고 꼬들밥이 좋다. 나의 한없이 가벼운 정체성중 하나이다. 아직 이런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 세상에 꼬들한 밥과 덜 익은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인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광화문집회 때 궁서체로 쓰인 '장수풍뎅이연구회'는 장수풍뎅이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단체라고 했다. 심지어 단체도 아니었다. 그 당시는 아무깃발대잔치의 정체성이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꼬들밥과 덜 익은 바나나가 정체성인 사람들이 모인다면 조금 별라보이는 나의 식성도 그렇게 그냥 이해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