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중심
나를 나라는 사람으로 만들고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매일 같이 하는 질문은 아니다. 나를 나로 만들어왔고 만들고 있는 요소는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질문을 할 때는 항상 남자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였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나보다 더 나일 수 없음을 드러내는 명제 같은데?)
팬데믹으로 인해 최소 지난 2년을 일, 와인, 많은 시리즈 드라마와 약간의 영화로 보냈다. 돌아보면 참 혼자와의 삶이었다. 생산적인 활동은 일 밖에 없었고 창작적인 활동이라면 매일같이 도수가 높아지고 다채로워지는 남편과의 언쟁뿐이었다. 3-4년 전부터 결혼 생활이 명백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동상이몽 하는 삶을 살았다. 10년 이상 된 결혼 생활에 보통 커플들에 비하여 없는 것이라면 아이뿐이었고 부족한 것이라면 멀리 계시는 부모님 뿐 직업도 있고 친구도 있고, 타지에 살면서 주눅 들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바래져 가는 관계는 흘러가는 시간처럼 잡아놓고 묵어놓을 수 없었다. 이 생각은 결혼 5년 차부터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이를 갖아서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가 없기에 더 독보적인 관계로 승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육체를 건강히 가꾸고 남편은 남편보다는 남자로서, 나는 아내보다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하이레벨의 문화생활을 누리는 엘리트 커플이 되겠다는 환상 같은 것. 하지만 평소에 열심히 갈고닦지 않으면 유지되기 쉽지 않은 이미지였고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덧 결혼 10년째를 넘어가면서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말다툼하는 관계 안에서 살고 있었다. 결혼 생활이 제대로 삐걱거리기 시작하자 자존감이 떨어지고 같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더불어 머나먼 타국 + 이혼 변수까지 붙여서 생각하다 보니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내 정체성이 온전히 남편과의 관계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인가. 이미 우리에게 아이가 "아직도" 없는 순간부터 평범의 궤도를 일탈했지만, 갑자기 평범한 결혼 생활에 대한 질투심 같은 것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사라져 버렸다. 나를 지탱하는 것들이 사라졌고 나를 이루던 것들이 증발하여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넘쳐나는 이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적용하려니 그 무게에 짓눌렸고 실패감과 실패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휩싸였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중심에 있었지만 서로 노력할 의지와 끈기는 파도치는 모래밭에서 모래성 쌓는 것처럼 부서지기 쉽고 아슬아슬해서 한 번의 파도에도 다시 제로의 상태로 되곤 했다.
이 무렵에 나온 영화가 노암 바움젝 감독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 주연의 결혼 이야기다. 혼자 보면서 펑펑 울었다. 내 결혼 이야기는 영화 스토리와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앉아서 울 돗자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다음 해에는 잉그마르 베리만의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제시카 차스테인과 오스카 아이작 주연의 결혼의 풍경 미니 시리즈 드라마가 나왔다. 여전히 비슷한 상황이 아니지만 외로워져 가는 결혼 생활의 테마는 영화의 거장이건 평범한 관객이건 모두 다 공감할 수 있는 일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렇게 3-4년을 몇 개월마다 한 번씩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패턴의 삶을 살았다. 억지스러운 노력을 끼워 맞춰가며 집착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에 매달렸다. 좋은 사람이란 뭘까.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좋은 사람과 궁지에 몰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정의는 같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초여름 불현듯 달라진 게 있었다. 40대인 나를 누가 만나주겠어에서 40이니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온전한 나로 사는 것이 좋겠다로. "이혼해도 괜찮아." 사회의 룰을 별로 따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도 사회적 압박의 틀과 너무나도 작은 자신의 굴 속에서 나오는 시도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 문장을 백 번, 천 번 되뇌어봤지만 겉도는 시도에 불가했는데 마치 규칙적인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어느 날 몸과 마음으로 흡수가 됐다. 결혼의 실패를 인정하고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해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보르도에 작은 아파트를 사서 평일에는 일을 하고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주말에는 대서양의 바다를 보러 가는 계획을 세워봤다. 이때 즈음 내가 알던 나의 선상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방향으로 항로를 조금씩 변경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사이 흰머리가 꽤 많이 올라왔고 그대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간직한 채 인생의 흐름을 느끼고 싶다.
이렇게 사고의 전환이 된 후로 (그 덕분일까) 웃기게도 결혼 생활의 파도가 잔잔해졌다. 돌싱으로 사는 모습 여러 번 그려봤는데, 올해는 아닌가 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