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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브 Feb 06. 2023

글 근육 기르기


눈 쌓인 소나무로 둘러싸인 프랑스 북동부 작은 도시 제라르메에 다녀왔고 밥벌이가 바빠서 약 2주간 이곳에 접속을 못한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그리고 노트에 메모는 꾸준히 했다. 일요일 저녁인 지금 마침내 용기를 내어 접속해 본 브런치에서 보내온 알림 메시지가 눈에 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어쩌면 이렇게 아픈 데를 콕 찌르냐. 이번주에는 운동도 가지 못했고 업무 관련 이외에는 한 줄도 쓰지 않았으니 살짝 생겼을 법한 약간의 근육들 마저도 사라졌을게다. 운동을 최소 3개월은 해야 자리 잡힌 근육이 눈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꾸준한 글쓰기를 3개월 이상 유지하는 것은 이보다도 더 힘들다. 일과 겸하는 책상머리에 앉아야 하고, 집중하는 환경이 필요하고 -와인도 필요한데 글 쓰다가 술주정뱅이가 먼저 될 것 같고- 무엇보다 운동과는 달리 글쓰기는 창작의 프로세스다. 시작과 결말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 내 나름의 일관성을 찾지 못하면 프로세스의 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매일 한 줄씩 써도 그만큼 뒤로 지우는 순간이 빈번하니 글쓰기 누르는 순간부터 발행 버튼 누르는 순간까지 며칠이 걸리고 그렇게 보류 상태의 순간을 참을 수가 없다. 여기서 글쓰기가 정체되고 내 글쓰기의 한계를 본다. 한 번 보류된 상태로 남은 글들은 다시 돌아보기 싫은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형태가 다른 이런저런 문서 작업을 할 때가 있다. 온전히 텍스트만 있는 문서, 마크다운이나 이미지 등을 이용해서 스키마를 끼운 텍스트도 있고 처음부터 테이블 형식으로 정보 입력만 하는 문서 등 다양한데 대부분 하루에 끝나는 작업인 경우는 없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쓰는 보류된 상태의 글을 맞이하는 데서 오는 거부감이 없다. 밥벌이니까 느끼지 못해도 강제성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라서라고 대충 짐작해 볼 수도 있겠지만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여 한 편의 글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제라르메 마지막 날에 짐을 다 정리하고 숙소에서 10시에 나와야 했다. 남자들은 오전 스키를 탄다고 산에 올라갔고 나는 백팩을 하고 시골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가득한 동네 카페에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때 랩탑을 꺼내서 서랍에 저장해 둔 글을 이어서 쓸 계획이었는데 끝까지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못했다. 대신 수첩과 펜이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그렇게 힘들어도 대신 펜으로 그 순간에 떠오른 글쓰기 자료를 적는 일은 경쾌했다.

writing in french

창 밖으로 보이는 눈 쌓인 시골 도심의 모습을 역시 자료 삼아 사진으로 담았다. 자세한 디테일과 기분을 당장 전부 텍스트로 옮길 수가 없어서 일단은 이미지로 저장해 둔 것이다. 여름에 남부 라그라스에 내려갔을 때 생각해 둔 것에 덧붙여 삼부작이 될 수 있을만한 큰 요소들이 모여졌다.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며 퍼즐을 모으지만 조립되지 않은 상태로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 근육을 기르는 마음으로 이 소재들의 조립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갈수록 윤곽이 보일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완성된 퍼즐의 큰 그림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아주 작은 온전한 단위 안의 글쓰기, 한 단락 혹은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게 작게 마무리된 단위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온전한 최종의 결과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발행을 누르는 순간이 완성이라는 압박감을 버리면 손가락이 가벼워질까. 하고 싶은 생각과 얘기가 많은데 지금 이 순간 두서가 없어 보여도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하나의 흐름, 반복되는 주제, 그리고 일종의 일관성이 있는 큰 그림이 되는 글쓰기를 반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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