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매 Oct 21. 2023

EP19. 훌라춤을 배우고 왔습니다.

갑자기 무슨 훌라춤이야

 한글날을 끝으로 기나긴 연휴를 보내고 한참을 침대에 누워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재밌는 걸 하고 싶다'고 말이죠. 그러던 중 우연히 팔로우하던 인플루언서가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훌라댄스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이요! 9만 원이라는 이야기에 잠시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 몇 밤 자면 놀이공원 가?"라고 묻는 아이처럼 클래스가 열리는 토요일만을 기다리며 5일을 보냈습니다.


 그 설렘을 감출 수가 없어 지인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나 토요일에 훌라춤 배우러 가!" 라고요. 한국인 특징인지 몰라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훌라훌라 훌라훌라 훌라춤을 춘다 탬버린~"이라는 현숙 선생님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반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무슨 훌라춤이야. 내가 아는 그 훌라훌라?"라고 되묻는 사람이 반이었습니다. 하긴, 훌라댄스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조금은 어색할 뿐더러 왠지 만화영화나 동화책에서 본 듯한 그런 모습으로 그려져 현실에서, 그것도 한국 도심에서 보기는 어려운 분야일 테니 당연했습니다. 그런 의아함마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드디어 토요일을 맞이했습니다.


타인을 통해 배우고 힘을 얻는 외향형 인간

 이번 클래스는 서울숲에 위치한 아주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열렸습니다. 이 그린랩이라는 공간은 제가 신입사원 시절, 우연히 벤치마킹하고 싶은 사례로 찾으면서 알게 된 공간이기도 해요.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오늘을 위해 준비된 스튜디오에 들어섰습니다. 원목과 패브릭, 꽃과 나무가 보이는 통창으로 구성된 공간에 맨발을 들인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유독 빠르게 유행이 오고가는 홍대와 이곳이 같은 서울이라니,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마치 나만을 위해 차려진 공간에 들어온 듯 잠시동안 그 공기를 느끼며 새로운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이후로 가족, 동료, 친구 외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기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는 선배의 초대로 재즈 파티에 간다거나, 매주 독서모임에 나간다거나,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갔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 클래스가 더 떨리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야티 선생님을 비롯해 낯선 사람들과 '자기소개'를 나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주 잠시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거든요.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되살아나게 해준 그린랩


 각자 불리고 싶은 이름, 한국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출신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등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쩜, 오늘 처음 보는 이들의 얼굴이 이렇게 밝고 행복해 보일 수 있을까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수원, 화성, 인천, 논현동에서 서울숲까지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여 모인 이들이 나누는 유대감은 얕고 짧지만 꽤 끈끈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에 이미 저는 힐링을 경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주어진 휴식의 날을 의미있게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가 이렇게나 대단하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달았죠. 유독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몸도 마음도 늘어졌던 지난 2년을 벗어나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와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새로운 사람이라서가 아닌 듯합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고 싶어 이곳에 온 사람들이자, 자신이 사랑하고 잘하는 분야를 가르치고 공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스치듯 봐온 사람들보다 훨씬 크고 긍정적인 기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혼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만큼 타인을 통해 배워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몰라요.


나, 훌라하고 싶어!

 꽃을 만지며 이어링을 만드는 클래스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훌라댄스 클래스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챙겨오신 파우 스커트를 하나씩 집어 들고 양말을 벗고 둥그렇게 모인 자리. 청소년기 체육시간 이후에 이런 구도로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처음이라 많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파우 스커트를 갖춰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나기도 했죠. 아직 잘은 모르지만, 훌라댄스는 하와이에서 문자가 발달하기 전에 춤을 통해 기록을 남기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춤과 현대화된 춤으로 구분되는데, 이 날은 현대화된 훌라댄스를 배우게 되었어요.


 춤을 잘 추지는 못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틈틈이 춤을 배워온 저에게 동작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손끝을 바라보며 미소를 유지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렵던지요. 미소를 짓다가도 잠시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정색을 하기도 했고, 손끝을 바라보는 데에 집중하다가 동작을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바다, 새 등이 등장하는 가사를 표현할 때에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 바닷가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 신기하기도 했죠. 겨우 한 번의 수업만으로 이 마음을 모두 표현하기란 어렵겠지만 간만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제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 첫 파우 스커트


 훌라댄스는 제게 말그대로 도전이었습니다. 6월에 찾은 발리의 한 바닷가에서 해가 지는 하늘을 뒤로 하고 삼삼오오 모여 훌라춤을 추던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도전도 분명 없었을 거에요. 그 날, 사진으로 찍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보던 풍경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았고 대충 그 춤이 '훌라'라는 걸 짐작하며 인스타그램을 뒤지기 시작했죠. 세상에, 한국에 훌라 선생님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취미라는 것에 두 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약 4개월 동안 수업을 들을지 말지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기에 이번 수업이 더욱 '도전'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행복한 일을 한다는 것

 사실 훌라 선생님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한 가지 있습니다.

 '너무 행복해보인다. 훌라 하는 사람들은 다 행복한가?'

 말도 안되는 일반화이겠지만 왠지 훌라를 시작하면 행복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주말을 투자해보았죠. 요즘은 좀 행복해질 만한 일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게 웬일인지, 훌라를 추며 만난 사람들, 선생님의 행복한 미소, 나의 손끝과 음악에 집중하는 순간, 품안에 서울숲을 담고 있는 통창 등이 이루는 하모니 자체만으로 금새 행복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되지도 않는 훌라춤을 선보이는 저를 보던 동생이 '얼굴이 폈네, 언니 정기 수업 들어'라고 말했을 정도로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기에 가끔 용기내어 도전해볼 만한 것이 아닐까요?


 20대 들어 가장 행복했고, 20대 들어 가장 돈을 잘 썼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어준 날이었습니다. 비가 오던 날씨, 공간, 분위기, 만남, 깨달음, 도전, 용기 등 그날의 3시간 30분이 주었던 특별한 경험이 언젠가 제 인생 속 큰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리고 하필이면 그 매개체가 훌라였다는 건 어쩜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아주 끼워 맞추기 1등입니다.) 행복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처음으로 진하게 깨달은 날을 꼭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EP18. 광고를 전공하고 관광을 연구하는 혼종(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