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 무뎌 보이지만, 새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 특히 낯선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여행'을 시작하면 그 예민한 기질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픈 건 당연지사. 관광을 업으로 삼고 있는 현재로서는 앞뒤가 안맞는 상황이긴 하다. 국내여행에서도 이미 여러 번 병원 신세를 졌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더더욱 불안감이 심해지곤 한다. 그건 지난 여름 발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23년 6월, 인도네시아 발리로 사내 워크숍을 떠났다.
5박 7일의 일정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내 휴대폰에는 3일 차 이후로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2일 차 저녁 즈음부터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하더니, 3일 차 저녁부터는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닌가. 절친한 동료들과 로컬 바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아, 신난다고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버티기가 힘들어질 때쯤 가방 안에 있던 타이레놀을 하나 꺼내 먹었다. 심장이 뛰는 증상과 타이레놀의 연관성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약은 그것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티를 내거나 걱정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 탓에 자의적으로 그 날부터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간신히 잠들고 나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고 숨이 막혀서 포털사이트에 '우붓 응급실', '발리 응급실 한국 의사' 등을 검색하면서 그래도 죽지는 않을 거라 안심했고, 유튜브에 '심장이 너무 뛸 때' 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지압법을 따라하며 밤을 지새기도 했다.
결국 5일 차, 우붓 시장에서 자유시간을 갖던 나는 다시 눈치없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저 살 게 있어서 저쪽에 갔다가 식당 앞으로 갈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동료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한복판에서 30초 정도 앉은 채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다. 그제야 뭔가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