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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Jan 28. 2024

[부정맥 일기] 발리에서 생긴 일, 아니 부정맥(2)

일단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구글 맵을 켜고 다같이 만나기로 한 장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죽더라도 한국사람 앞에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얼굴(팀장님)을 만난 순간부터 약간의 안정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 두근거림과 열감, 메슥거림, 두통 등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 회사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내 증상을 설명했다. "며칠 전부터 아팠거든요. 찾아보니 공황장애이거나 부정맥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래 보여요. 헉헉"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더위 먹은 것 같은데?"


더위를 먹었다고? 나는 한여름에도 땀이라는 걸 거의 흘리지 않는 사람인데.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더위 먹었을 때'를 검색해보니 당시 내 증상에 딱 들어맞았다. 지난 며칠간 방구석 돌팔이 의사가 되어버린 나는 내 병명을 '부정맥'으로 진단했는데 이게 더위 먹은 증상이라니. 힘이 빠지는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의 몇 년만에 그날 저녁은 아예 먹지 못했고, 야간 공연을 보는 와중에도 너무 아프고 답답해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는 먼저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이틀 후,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네시아 공항에서도 심장 두근거림과 어지럼증이 심했지만 다들 걱정할까봐 티는 내지 못했기에 혼자 손을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집에 가고 싶다. 해외여행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 비행기 안에서 죽으면 지나고 있는 나라 위에서 죽은 걸로 친다는데 그렇게까지는 죽고 싶지 않아. 일단 집에 가야 해. 지금은 덥지도 않는데 심장이 뛰는 걸 보면 이건 부정맥이야.'



살 만하니 생각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국에 도착하니 발리와 다를 바 없는 한여름 무더위가 나를 반겼다. 분명 같은 더위와 찌는 듯한 햇빛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생각이 나서 제일 큰 사이즈로 한 잔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아, 이때 더 열정적으로 마셔둘걸 그랬지)


이제 죽어도 한국에서 죽는구나. 당장 병원에 갈 수 있겠구나. 나는 살았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여, 열심히 살게요.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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