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매 Jan 29. 2024

[부정맥 일기] 난생 처음 주치의가 생기다.

한국에 돌아온 날부터 본격적인 부정맥 공부가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방구석 돌팔이 의사인 내가 내린 병명이 부정맥이었으니까. 일단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내과, 심장내과, 심혈관센터, 한의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잘 맞는 병원은 따로 있는 거니까.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심장 두근거림 증상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심장'을 전문으로 보는 병원을 찾기로 한 것. 대학병원은 외래 진료를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일단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대신 직장과 가까운 공덕역에 꽤 유명한 심장내과를 찾아 바로 진료 예약을 하게 되었다.


6월 월차를 내고 새벽부터 심장내과를 찾았다. 심장내과라는 한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엄청났다. 지금껏 살면서 건강과 체력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지내던 나에게 이 상황 자체가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서웠다. 메디컬 드라마나 다큐에서 보던 '심장'은 흉부외과에서 촌각을 다투며 수술하던 장기였기에 뭐 하나라도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곧장 그 수술대에 누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병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더니, 그게 딱 맞았다.


다행히 겁 먹었던 것에 비해 심장내과 원장님은 세상 친절하고 상냥하게 내 증상을 들어주셨고 다양한 검사를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24시간 홀터 검사, 갑상선 검사 등을 비롯해 2주에 걸쳐 많은 검사를 받았다. 24시간 홀터 검사는 작은 심전도 기계를 심장에 달고 일상을 보내면서 심장박동수를 기록하는 검사이다. 이 기계를 달았던 날은 하필이면 할머니 생신파티가 있어 일가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이게 뭐야?"라고 물어봐서 일일이 답변을 해줘야 했다. 아직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도 않은 상태라 그냥 해보는 검사라고 대충 말을 흐렸다.


사실 심장 두근거림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증상 없이 넘어가는 날도 많다. 그래서 이 홀터 검사를 하는 24시간 동안 동일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오는 사람도 꽤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 병의 원인을 너무 알고 싶던 나머지 "아, 제발 자는 동안 심장 좀 많이 뛰고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잠들기도 했다.


그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여러 검사를 통해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물론 아주 근본적인 원인부터 살펴보면 단기간에 급격한 체중 증가와 역류성 식도염이 가장 크다고 했지만 부정맥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날로 식도염 약과 부정맥 약을 받아 현재까지 꾸준히 먹고 있다. 이제는 약이 떨어질 때가 되면 병원을 찾아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약을 다시 받아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는 의사 선생님이 생겼다. 담당의와 주치의의 차이를 여전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나에게도 내 심장과 삶의 안위를 걱정하고 물어주는 주치의가 생겼다. 이제껏 그녀의 존재 없이도 잘 살아왔지만, 이제는 오지 말라 해도 매번 가서 보고 싶은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사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정맥 일기] 발리에서 생긴 일, 아니 부정맥(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