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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Mar 02. 2024

어디에서도 청춘은 늘 봄이다

영화 <청춘>(봄)

왕빙 감독의 <청춘>(봄)


  내가 처음 본 왕빙 감독의 작품은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2013)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허세롭게 영화제를 즐기는 기분으로 예매했던 영화다. 러닝타임이 거의 4시간에 육박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호기롭게 예매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 어딘가엔 왠지 끝까지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보다가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그냥 나와 버리려고 절반쯤 지난 시간에 다른 상영관 작품을 보험으로 예매해 두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영화는 두 시간이 지나도록 시커먼 화면 속에서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정신병원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서, 멀쩡한지 이상한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람들을 봉고차에 실어 그 정신병원으로 데려왔고, 이들이 그 환경을 점점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러다 내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떠올리며 나는 영화관을 뛰쳐나왔다. 보험으로 예매해 둔 영화를 보러 가며 참 잘 들어둔 보험이라는 생각을 하며 예매해 둔 나 자신을 칭찬했다. 


  후에 지인이 말했다. "끝까지 봤어야지.. 네가 나간 이후부터 왜 그런 상황들이 벌어지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납득할 수 있게 되는데…" 정말 좋은 영화였다는 충격적인 감상과 함께. 나는 그 영화를 포기하고 나가서 봤던 영화는 기억하지 못한 채 이 영화를 포기했다는 후회만 품게 됐다. 물론 순전히 지인이 감상평 때문이지만. 이후 나는 왕빙 감독의 영화를 볼 기회가 되면 러닝타임에 쫄지 않고 봐야겠단 마음을 먹게 되었고, 몇 편의 영화를 보면서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왕빙 감독의 카메라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포장하지도 가리지도 않고 그야말로 다큐로 카메라를 훅 밀고 들어와서는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서는 결코 비껴서지 않는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은 마음에 슬쩍 내 마음을 뒤로 빼보지만, 밀고 들어온 카메라는 나의 마음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저 주인공들을 너무 대상화하며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스미지만, 그래도 카메라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게 밀고 들어온 카메라는 관객들이 그 인물에 대해 관객들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때까지 바짝 붙어 서서 그 인물의 세세한 면모를 묵묵히 담는다. 처음엔 주인공이나 작품 속 인물들이 미친 것 같아 보이고,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고, 무식해 보이고, 더러워 보이기도 한다. 혹은 나와는 너무 다른 족속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도 생긴다. 하지만 결국 관객들이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 우린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공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는다. 


  왕빙 감독의 카메라의 힘은 거기에 있다. 그래서 긴 러닝타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힘들어도 보다 보면 분명히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알지 못하는 것을 반드시 알게 되고야 만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주인공을 애써 포장하고 미화하고 적절히 가리며 카메라의 특별한 시선으로 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자체로 교감하고 공감하고 그래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것. 그 뚝심에 빠져 들고, 그 끈기와 인내에 감동하게 된다.





  <청춘>(봄)은 인간의 한 시절을 다루고 있다. 사회인으로서 움트고 세상과 직접 소통을 시작하는 즈음의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이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중국 상해 인근 리밍의 한 의류공장에 모여 일하고 같은 건물의 기숙사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 15시간을 재봉틀을 돌리고 일이 끝나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숙사로 돌아간다. 낡고 오래된 건물 구석구석엔 죄다 쓰레기다. 건물 밖이며 복도며 온통 쓰레기더미인데 그곳을 오가며 식사를 하고, 그 속에서 씻고, 그 안에 지친 몸을 누인다.



  다 저물어져 가는 그 건물 속에서 그들의 봄, 청춘이 피어난다. 공장에서는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이들은 그 속에 음악을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노래 가사처럼 썸을 타기도 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폭발하는 에너지가 부딪혀 싸우기도 하고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영락없는 10대의 모습이다. 일을 할 때도 속도 경쟁에 불을 붙여 내기도 하고 서로 이겼다고 우기기도 하면서 까르르 거리는 모습을 한참 보다 보면 여느 10대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을 할 땐 로봇 같고 기계 같다. 또한 진지하다. 그런데 보다 보면 일 한 만큼 보수를 받기 때문에 대충 시간을 때울 수도 없다. 시시껄렁한 농담과 가벼운 웃음소리들을 들으며 두 시간 신나게 재봉틀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 소리는 무거워진다. 그저 철없이 재미로 내기를 하나보다 했는데 기계처럼 로봇처럼 속도를 내며 진지해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 한 만큼의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똑같이 야근하고 온종일 일해도 속도가 느리면 돈을 덜 받아가게 된다. 



  야근까지 바짝 해서 최고로 받아가는 금액이 우리 돈으로 250만 원쯤 되는데, 이조차도 쉽지 않다. 주문요구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그나마도 물량이 줄고 있다. 리밍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의류공장이 모여있는데 여기저기 다른 공장을 돌아다녀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데를 찾기는 어렵다. 공장주도 마찬가지다. 예전만큼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어리고 순진한 일꾼들을 혹사시키며 일을 가르치지만, 그들도 이제 일을 알만하면 더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나버리니 말이다. 



  영화는 이쯤에서 끝이 난다. 이 영화는 2014년부터 19년까지 6년간 촬영한 10시간짜리 3부작 영화 중 1부에 해당하는 4시간짜리 작품이다. 따라서 이 내용을 모두 스포 한다고 해도 스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왕빙 감독의 영화는 직접 보지 않고서 그 진가를 알기 어렵다. 오랜 시간 우려낸 장인의 국물 맛은 먹어보지 않는 이상 그 깊은 맛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긴 러닝 타임에 겁먹지 말고 뛰어들어 보시길. 그 긴 러닝 타임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왕빙 감독 의지이자 그 방식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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