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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Sep 08. 2023

사각만다라에 갇혀 소실되는 명왕성

영화 <명왕성>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

명왕성은 태양계 마지막 행성이다가 밀도나 질량이 낮고 궤도도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퇴출되었다. 물론 태양이 기준이라는 전제에서 퇴출되는 것이나 우주전체에서 본다면 명왕성은 그저 자신만의 궤도를 잘 돌고 있는 하나의 행성일 뿐이다. 태양계가 수용하건, 하지 않건 명왕성은 달라질 게 없다.   


영화 <명왕성>의 중심에는 한 사립과학고가 있다. 소위 말하는 강남스타일 우등생들의 집합소 같은 학교이다. 여기에 강남 출신이 아닌, 평범하지만 실력을 갖춘 '준이'라는 학생이 전학을 온다. 이 학교를 기준으로 한다면 준이는 명왕성 같은 아이다. 이 학교에 전교 10등까지 이용할 수 있는 '진학제'라는 스터디룸이 있는데 준이는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수진을 통해 '토끼사냥'이라는 비밀스터디 그룹을 알게 되고, 토끼사냥을 발판 삼아 진학제에 들어가려는 준이의 행보를 따라 학교의 내부가 세밀하게 파헤쳐진다. 


감독은 교사였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라는 사회 안에, '입시'라는 틀에 막혀 벗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명왕성과 태양계'의 관계에 빗대어 영화에 담았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빛으로 에너지를 폭발하는 별들의 모습을, 1등만을 향하도록 하는 학교 환경에 대치하였다. '토끼사냥'은 학교에서의 1등, 명문대로의 진학이 과연 진정한 상승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수단이다. 그것을 상승으로 느끼게끔 만들어 놓은 학교나 사회, 이 구조가 과연 정답인가에 대해 반향심을 표하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아등바등 애써봐야 '학교'라는, '입시'라는 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목고로, 진학제로, 전교 1등으로 열심히 내달리는 것이 성장인지 곤두박질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는 사각틀의 깊은 수렁 속에 담긴 학생의 모습을 담은 장면을 반복하여 보여주면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제도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하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도, 교사도, 공권력을 가진 경찰조차도 손 쓸 수 없는 이 강력한 프레임을 어쩔 것인가. 영화는 시종일관 이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이 영화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학생에 대해 현실성 없이 그리고 있다고 평하기도 하고, 인간을 너무 무기력하게 그렸다고 평하기도 했다. 내용이 너무 판타지에 가깝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충분히 현실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나 사회의 틀에 묻히고 눌려 삶에 쪼들리다 보면, 제도 밖의 상황에 대해 무기력하고 무능력해진다.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 결말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심각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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