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다짐

by 걷기예찬

나는 순례길을 걷기 위해 작년 여름 이곳, 스페인에 왔다. 내가 정말 걷고 싶었던 길은 북쪽길. 스페인 북쪽 항구 도시들을 따라 매일 다른 해변을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다만, 북쪽 길은 프랑스 길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바글거리는 프랑스 길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결국 돈이 없는 나는 순례길을 걷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돈이 없다. 세비야에서 9개월 동안 스냅사진을 찍으며 돈을 벌었지만, 결국 '나는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월세를 내고, 짠내 나는 여행도 몇 번 다녀오고, 주식으로도 날려 먹었지만, 결국 내 지갑을 피폐하게 만든 건 '크고 작은 쇼핑과 술'이었다.


내가 물건에 욕심을 부렸던 건 더 여유롭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한정된 돈에 쫓기다 보면 결국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게 된다. 어제 산 필요 없는 옷 때문에 오늘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눈치 보며 보내게 되는 것. 내가 원했던 여유로운 삶은 결국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


지난달엔 여자친구를 만나러 미국에 다녀왔다. 세비야에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보스턴, 뉴욕을 거쳐 13일간 여행을 했다. 작은 백팩 하나에 바지 두 벌, 상의 두 벌을 챙겨 갔다. 그런데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워서 좋았다. 적은 옷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떻게 하면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많은 물건은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최소한의 물건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세비야 과달키비르강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