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EP <동물>
인간은 고유한, 독립된 개체이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하다. 불가해한 대상은 공포를 유발한다. 타인은 예측되지 않는 변수이기에 두렵다. 그러나 인간은 홀로 살아가지 못한다. 갓 태어난 인간은 무능력하다. 타인과의 공존은 그렇게 시작된다. 인간은 성장하며 더 많은 타인을 만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늘어난다. 이때 인간은 불가해를 수용하거나, 자신을 유폐한다. 쏜애플의 화자는 자신을 가두었다. 불안을 배제하고 상처를 방지한다. 가시돋친 상태를 유지하며 경계한다.
그 상태에서 화자는 나아간다. 나에게 쏜애플의 노래는, 자신을 방어하던 가시를 제거해가며 타인에게 다가가는 과정이다.
쏜애플의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에서 화자는 소통을 시작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화장을 하고 나도 몰래 타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빨간 피터) 시작한 소통은 어렵다. 화자는 소통의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냥 여기에 있어줘, 깨어나지 말고 차라리 이대로 죽어줘”라고 (아가미) 절규하고 “대체 어느 쪽이 사람인지” 어리둥절해하며 “아무나 날 꾸짖어”달라고 한다. (너의 무리)
결국은 “많은 바람들을 조심스레 묻고”, “현실에 발을 딛”지만 (플랑크톤), 화자는 미숙하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이런 걱정에 나는 밤을 새 버렸네” (이유) 라고 이야기하며 소통의 미숙함을 드러낸다.
2집 <이상기후>에서 쏜애플은 세상을 받아들인다.
“혀 끝을 물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며 (남극) “몸에 흐르는 새빨간 피의 온도로만 말하고” “몀추지 않고 몸부림치며 기어가” (시퍼런 봄) 고자 한다.
여전히 미숙하기에 “어차피 이 지구에선 모두 외톨이, 나를 구해줘요 따윈 모두 헛소리” 라고 하거나 (백치), “오늘은 어제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길에서 죽어간 하루, 오늘은 누구의 목숨도 내겐 의미 없는 힘겨운 열대의 하루” (낯선 열대) 라며 회의적 시각을 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너와 눈을 똑바로 보고 싶”다고 하며 (베란다) 직면을 준비하고 “지금 여기에, 차는 숨을 내쉬며 살아있”다고 외친다. (아지랑이)
EP <서울병>의 화자는 고립된다.
“언젠가 목마름이 그치긴 하나” 물으며 “모든 걸 알게 될 거라 난 믿었었나, 어리석어라”라고 자조한다. (한낮)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눈앞에 숨을 쉬는 네가 싫어”라는 말로 타인을 밀어낸다. (어려운 달)
이에 대한 극복 없이 “함께 울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는 법만 배우다 아무 데도 가지 못 한 채로 이 도시에 갇혀버”리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서울)
3집 <계몽>에서, 화자는 끝내 타인을 받아들인다.
“목을 꺾어 뒤를” 보았더니 “잊고 싶은 일들이 한가득 있”고, “몸을 돌려 앞을” 보니 “하고 싶은 일들이 한가득 있”다. (2월) 그렇기에 발을 내딛지만 “나는 날 좋아할 수가 없”다거나 나는 날 안아줄 수 없었”다고 하며 (로마네스크) “함부로 나오지 말 걸 그랬나, 잠이나 잘 걸”이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기린)
그러나 일련의 과정 후 화자는 “잠시나마 혼자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대 나의 별이 되어 날 이끌어” 달라고, “나날이 저무는 나의 목소리”가 “그대에게 닿”으라고 노래한다. (은하) 그 후 “그대를 가득 흘려 넣고”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검은 별) 타인을 받아들인다.
타인의 수용, 소통에 관한 서사는 이렇게 완결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거부하던 현실에 발을 딛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포용한다. 쏜애플의 화자는 더 이상 고슴도치가 아니다. 35곡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것을 끌어안고자 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야기의 마무리 후 쏜애플은 공백기를 가졌다. 갈무리하고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다. 공연에서 이야기한 바로 추론했을 때, 쏜애플은 갈무리를 마쳤고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갔다. 그것이 EP <동물>이고, 쏜애플은 현재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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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한 동물이다.
동물은 인간에 비해 현재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이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고뇌할 때 동물은 현재를 살아간다. 정해진 끝이 있다면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만 인간은 이를 잘 하지 못한다.
쏜애플의 EP <동물>은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세상(또는 존재)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현재에 집중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첫 곡의 제목 <멸종>부터 종말에 대한 느낌이 잡힌다. 세상은 이미 불타버리고 있다고 마지막을 노래한다. 35개의 곡을 통해 화자는 타인을 받아들였다. 주체는 ‘나’가 아닌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영원히 외롭지 말자고 다짐했고 둘이 맞이한 마지막에서는 춤을 춘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혼자 남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노래’가 되겠다고 한다.
다른 곡들에서도 마지막에 대한 언급은 계속된다. “재가 돼버릴 세상” (할시온), “겨울이 다 끝나도 피어나지 않을 죽은 꽃들” (살), “어차피 끝은 정해졌고” (파리의 왕) 와 같은 가사. 마지막 곡 <게와 수돗물>에서 흐름은 고조된다. “우린 떨어지다가 점점 스러지다가 끝내 잊혀질 거”라고 한다. 후렴구는 <멸종>에서 ‘나’가 되고자 한 ‘노래’를 부정한다. “여기에는 노래가 없다”고 하며 마지막의 ‘나’는 철저히 부정된다.
그럼에도 화자는 현재를 살아가고자 한다. “재가 돼버릴 세상인 것을 알고 있지만” “오늘도 난 너를 삼키”는 (할시온), “피어나지 않을 죽은 꽃들”이더라도 이를 심는 (살), 내일도 오늘도 없을 것임에도 “그저 밖으로 나가”는 (파리의 왕) 행위들은 종말을 외면한다. 이미 정해진 끝은 바꾸지 못한다. 화자는 이에 절망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기에, 그저 현재를 살아간다.
<게와 수돗물>의 가사는 인상깊다.
얼마나 남았을까 아직 알 순 없어도, 우리 앞의 기나긴 시간들을 살아가자. 너와 내게 남겨진 생명을 다해 살아가자.
동물은 현재를 살아간다.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너 또한 동물이다”라는 문장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인간보다는 동물의 능력이다. 저 문장은 너 또한 현재를 살아갈 가능성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개인 간의 소통에 대한 서사는 완결되었다. 이제 쏜애플의 화자는 그 이상을 추구한다. 그간의 서사를 통해 적대심과 소극성을 버렸고, 이제는 적극적인 철학을 추구한다.
어떤 방향으로 서사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능동적 노선을 포기하고 염세적 허무주의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행복한 시시푸스가 될 수도 있다. 10년의 서사가 끝난 후 시작된 쏜애플의 두 번째 이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