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괜찮을까
내일이면 남편과 나는 출산 이후 처음으로 아이들 없이 둘이서만 여행을 떠난다.
20여 년 동안 여행은 셋이나 넷이었는데 이제 우리 둘만 스케줄이 맞으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며 성인 4명이 들어가는 호텔 선점은 늘 어려웠고 항상 2개의 방을 예약하고 커넥트룸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이제 비행기 티켓도 달랑 2장이면 되고, 방도 딱 1개만 예약하면 되니 부담이 반으로 줄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는 조건이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성수기 시즌을 피해 남들이 가지 않는 시기에 아주 경제적인 비용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과 생활 사이클이 비슷한 남편과 둘만 가니 고려해야 할 것도 반으로 줄어든다.
까마득한 시절의 가슴 설렘은 진작에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지만 이제 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과 간다는 사실은 마음의 부담감은 확 줄고 안정감이 더 크다.
처음 둘이서만 가는 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좀 더 미루었다가 겨울 방학에 애들과 다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런데 네 명이 아닌 두 명으로 예산을 잡으니 가벼워진 경비만큼 경제적인 부담도 확 줄어들었다.
네 명이서 스케줄을 맞추기도 어려워졌고 서로의 여행 니즈가 너무 달라 모두를 만족시킬 여행은 되지 못했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은 오전 11시 넘어서 까지 잠을 자야 했고 씻고 숙소를 나서며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하니 일과는 보통 2시 이후가 되어서 시작되어서 하루가 짧았다. 남편과 나는 늦어도 8시만 되면 눈이 떠지고 멀리까지 온 여행지에서 잠자는 아이들을 기다리느라 오전을 보내는 건 너무 무료했다. 어디를 갔다가도 점심에 맞추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것도 매 번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아이들은 그런 곳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고 지루하게 느끼기만 했다.
어린 그들은 현대적인 곳에서 오롯이 지금의 잘 나가는 문화를 즐기고 싶어 했다.
어느 순간부터 넷이서 함께하며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 어려워졌다. 그들은 이제 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서 그들만의 니즈로 알차게 보내고 오기 시작했다.
부모가 데려가는 여행에서 그리도 비협조적이던 그들이었지만 자기가 부담을 하고 가는 여행에서는 상당히 열성적으로 곳곳을 돌아다니고 잘도 쉬면서 여행을 즐기고 왔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는 자기들끼리 갈 수 없으니 부모들 없는 여행은 상상도 못 했지만 이제는 자기들끼리 충분히 갈 수 있으니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훨씬 즐거울 것이다.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겨울에 비틀어진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찬바람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다.
대견하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이 든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서만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앞으로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둘이서 다니자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려가지 않고 명치끝에 늘 걸려있는 여행의 체기가 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MBTI가 P로 빈틈없이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J들이 하는 철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사실 세워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기에 아예 시도 조차하지 않는다. 적당히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것까지 계획을 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 둘 중 조금 더 P의 성향이 강한 사람만이 계속 편안할 수 있다. P의 성향이 조금이라도 덜한 사람은 답답해서 보다 못해 항공권 예약부터 호텔 예약, 가볼 곳 찾기, 맛집 찾기까지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 그 여유 있던 P는 계획을 세우는 것에 있어서만 느긋하고 (자기가 하기 싫으니 안 하는 것이겠지) 여행지에서는 급한 성격으로 인해 J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짜증을 내는 몹쓸 불치병을 가지고 있다.
여태까지의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보다는 여행에서만 J의 성향이 한 방울이라도 더 있는 내가 항공권 예약부터 일정과 식당까지 모두 내가 담당이었다. 그래서 현지에 가서 수없이 다툼이 있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지 못하는 길치병을 단단히 앓고 있는 나는 매번 방향을 잡지 못해서 헤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모든 것이 딱딱 떨어져야 하고 완벽해야 안심을 하지만 결코 자기는 계획을 하거나 검색을 하지 않는 정말 피곤한 꼰대 상사 같은 모습으로 우리는 여행 때마다 잔잔히 도 다투고 대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패키지여행에 맞는 사람이지만 자기는 절대 짜인 패키지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는 게 그리고 자기가 찾아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완벽하게 자기를 데리고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현지 가이드를 원하는 것이다. 말 안 해도 자기가 원하는 식당에 데려다주고 니즈에 맞는 볼거리와 숙소를 찾아주길 바란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터넷만 톡톡 두드리면 완벽하고 정확한 정보가 쏟아져 나올 거라 생각한다.
3번 지하철 출구로 나가 동쪽 방향으로 10m 걸어가서 오른쪽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열 번째 건물 2층으로 가면 떡하니 목적지에 도착하는 정도의 상세한 정보가 인터넷에 줄줄이 다 있다고 믿는 컴맹이다. 여기 10M라고 했는데 보이지 않으면 그때부터 열을 받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안절부절못하며 목부터 뻘겋게 달아오르고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런 걸 여러 번 그리고 매번 겪다 보니 같이 여행하기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난 왜 매번 이런 불치병의 사람과 여행을 떠날까? 정말이지 자유여행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는 당신이랑 여행을 가지 않을 거야. 여행을 또 가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매번 외치지만 으름장을 놓지만 그는 쉽게 변하지 않고 난 또 이 길을 간다.
이번 여행도 내가 걱정으로 결정을 망설이니 자기가 모든 걸 다 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특가가 뜬 항공사 회원가입부터 버벅 거리기 시작했다. 특가가 곧 사라질 판이라 내가 예약을 했다.
호텔 예약은 남편에게 맡겼다가 무조건 비싼 것들만 예약할 거 같아 내가 또 했다.
여러 개의 선택지들을 카톡으로 공유하며 선택하라고 했건만 차이를 모르겠으니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늘 하는 말 "난 자기 말을 잘 듣잖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난 돈만 낼게"
'행여나 당신이 그럴 사람은 절대 아니잖아. 내가 당신을 한두 해 겪는 것도 아니고 벌써 스무 해를 넘겼다고'
아니나 다를까 호텔 예약이 다 끝나고 나서부터 홈쇼핑에 나오는 여행지의 호텔을 볼 때마다
"나 저기로 갈래. 저런 곳에서 자고 싶어. 저기 잡아줘"
"이미 예약 끝났어"
"왜 그렇게 일찍 했어. 저런데 있는 거 몰랐지? 제대로 안 찾아봤지?"
이런 헛소리를 또 하신다.
여행 열흘 전에 숙소 잡는 게 빠른 것인가? 비교하고 동선 맞추느라 숙소 예약을 안 하고 있으니 여태까지 숙소 예약도 안 했냐고 빨리 잡으라고 재촉을 하더니만.....
둘이서만 떠나는 해외여행인데 과연 우린 제대로 다녀올 수 있을까?
낯선 나라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한 그가 두렵다. 내 내면에 항상 끓고 있는 불안한 용암이 여행지에서 터질까 봐 걱정된다. 이제 중간에서 중재를 해 줄 사람도 없는데 완전히 틀어져 혹시나 '우리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함께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내 마음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
서로가 너무 편하니 일어나는 일이다. 조심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 하나하나에 내 속은 뒤틀린다. 그냥 흘러 넘기지 않는 나로 인해 남편 역시도 마음이 뒤틀린다.
오히려 남이었다면 서로에게 관대할 텐데 말이다.
나는 과연 그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다음 여행을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