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무 Feb 18. 2023

그대는 총천연색

뮤직비디오 감독의 작품 리뷰 <장면의 숨은 의미 찾기>

(Part 2를 보고 오시면 보다 이해가 쉽습니다.)

영상 링크

영상은 카메라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는 배우의 얼굴, 갈대숲의 앰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시작됩니다.

'10초'라는 긴 시간 동안, 눈빛만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시청자들의 몰입을 돕기 위해 디지털 줌인(인위적인 티가 나지 않는 수준에서)을 사용하였습니다.

*디지털 줌인: 편집 단계에서 스케일 값, 즉 촬영본의 크기를 키우는 것


왜 시작부터 바로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어떤 서사가 있음을 알려주고 몰입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주로 내러티브가 있는, '영화적인' 뮤직비디오 인트로 구성에 많이 쓰입니다. 일부 작품은 음악이 나오기 전 '대사'가 있기도 합니다.

컷이 길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었던 인트로를 넘어 '후킹'의 요소로서 와이드 하고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 컷을 삽입했습니다.

비현실적으로 광활한 자연 속에 홀로 자전거를 타는 여자의 모습

'와' 여기 어딜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고, 뒤 이은 장면들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줍니다.

(조종기와 기체를 동시에 체크할 수 있는 포지션에 차량을 세워두고, 에어팟을 통해 배우님과 소통하며 드론을 통해 촬영한 장면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기에, 큰 디렉션은 없었습니다.)

*드론 기종 : DJI Mavic2 Pro

그리고 음악과 함께 흐르는 내러티브 이미지들.

여자는 다소 울적한 표정으로 멍을 때리거나, 빨래를 하다 말고 주저앉거나,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등 非 일상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여자의 일상이 무너져 가는 중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누구를, 무엇을 기다리나요?

여자는 기차가 오지 않는 기차역에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낡은 건물 앞에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습니다.

쓸쓸해 보이는 그녀.

*기차를 타고 와야만 하는 누군가는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건너지를 못하니?


철길 건널목을 기준으로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보입니다. 안전 막대가 올라가 있지만, 그녀는 쉽사리 건너지 못하고 그 위에 서서 오랫동안 고민을 합니다. 긴 고민 끝에 선을 넘고 걸어갑니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여자. 걸어갈 수 있는 길임에도, 쉽사리 걸어가지 못했던 여자. 비일상적인 행동만을 보여주던 그녀의 일상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조금의 희망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음악이 뚝 끊기며, 꿈속에서 눈을 뜨는 여자. 갈대를 쓰다듬어 봅니다.

*갈대밭의 앰비언트 사운드들과 POV 컷을 통해 현장감을 살린 장면입니다.

POV: Point of View의 약자 1인칭 시점으로 시청자가 직접 눈으로 보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내는 방식

꿈에서 깨고 일어난 여자, 자신의 몸에 묻어 있던 갈대를 보며 그저 한낱 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하는 여자.

줄곧 갇혀 있던 어둡고 좁은 방에서, 넓고 밝은 자연의 공간으로 나아갑니다. '꿈'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맞이함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기차가 카메라를 향해 들어오는 장면.

 꿈에 그리던 누군가가 내게 다가온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다 앞. 또 한 번 화면이 화이트 디졸브 되며, 꿈속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공간이 보입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갈대밭.

*누군가를 찾아다니던 그녀의 '능동적인' 행동이 얻은 '희망'. 잠을 자지 않고서도 꿈속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그녀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걸까요?


첫 번째 곡인 '그대는 총천연색'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인 '접몽'으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감정이 '절정'으로 차오른 부분이죠. 여자는 갈대를 헤치고, 하염없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처음 '접몽'을 들었을 때 모든 장면이 너무 쉽게 그려졌습니다. 지글지글한 노이즈의 기타 사운드와 어울리도록 핸드헬드 촬영, 느린 셔터스피드를 활용한 잔상 효과, POV 컷들을 기획했고 이를 디졸브를 활용해 믹스하여 편집했습니다. 꿈속의 장면임을 강조하기 위해 샤픈을 약간 낮추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디일까요? 무엇을 본 걸까요?


15초 넘게 여자의 얼굴 컷이 이어집니다. 처음으로 표출되는 격한 감정. 무언가를 발견한 듯 희미한 미소를 띠는 그녀. 뭉클해 보입니다.


Director's commentary

여자가 그토록 기다리고 찾아 나섰던 존재는 끝까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여자가 그 존재를 발견한 것인지 아닌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스토리라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그 대상을 '사별한 연인'으로 설정해 스탭과 배우 모두가 몰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제가 설정한 여자의 '꿈'은 더 이상은 보거나 만질 수 없는 옛 연인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쳐 일상이 무너진 여자에게 '꿈'은 무한한 희망의 공간이죠. 여전히 총천연색으로 생생한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여자의 미련하지만 애틋한 마음. 영상에서는 보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대상을 만들어 상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음악과 영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도록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로케이션 헌팅의 모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