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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무 Feb 12. 2023

꿈속에서 그대를 만났다

뮤직비디오 감독의 작품 리뷰 <컨셉 기획 및 스토리텔링>

희끄무레한 리뷰 첫 번째 작품

한국대중음악상(KMA) 2021 최우수 모던록 후보에 올랐던 곡이자, 3년 전 제가 연출했던 '신해경'의 '그대는 총천연색'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신해경 - 속꿈, 속꿈' 앨범 재킷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기획하는 걸까요?


작품 리뷰에 앞서, 이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부터 말해보겠습니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 뮤직비디오의 역사, 유래 이런 이야기 말고요.


뮤직비디오의 근본 = 음악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광고, 패션필름, 다큐멘터리 등 다른 장르의 영상과 달리 뮤직비디오의 기획은 '음악'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음악이 주는 느낌'과 '가사의 내용' 2가지를 밸런스 있게 잘 고려하고, '음악'이 돋보일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 외에 부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습니다.


아티스트의 이미지

아티스트의 니즈

(앨범이라면) 앨범 전체의 방향성

곡의 비하인드 스토리

다른 트랙 또는 영상과의 유기성

시청자 또는 팬들이 바라는 니즈

현실적인 제작비(예산)

...


첫 아이디에이션 때부터 위 모든 요소들이 고려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들은 상상에 제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감독님은 그냥 가사 한 줄에, 어떤 감독님은 멜로디가 주는 느낌에 꽂혀 아이디에이션을 하시기도 합니다.

허나 지속적으로 기획안을 디벨롭하고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는 위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티스트 또는 회사의 입장에서도 위를 생각하는 감독이 기획한다면 믿음직스럽겠죠. 무엇보다 감독, 아티스트, 회사, 대중 또는 팬 등 모두가 만족할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1%는 높아지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그대는 총천연색'을 듣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음원 링크





제게 이 곡은 따뜻하면서 몽환적이지만, 무드가 밝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연'이 많은 사람. 겉으로는 밝고 아름답지만, 속 깊은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 내밀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사는 인물이 떠올랐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물의 현실과 꿈의 공간이 크게 달랐으면 했고, 꿈속의 공간은 아무도 없는 광활한 자연이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90년 작품인 '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꿈을 꾸는 사람.
꿈속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꿈을 꾸는 사람.
*실제 제가 작성했던 기획안의 표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꿈'의 포스터


다음으로는 가사를 한 번 보겠습니다.


그대는 총천연색 가사

오늘은 그대만큼 따뜻해요

어두운 밤 그대처럼 깊어지면

눈을 감고 그댈 잠시 불러봐요

이런 내 마음 알고 있니?


이제는 기다리지 않을테요

하지만 다시 만날 그곳에선

잠시라도 좋으니까 함께할래

이런 내 마음 알고 있니?


잠시만 그댈 잊게 해줘

아주 슬퍼도 그댈 찾을 수 없게


잠시만 그댈 만나게 되면

홀로 지샌 밤 마치 그대처럼 빛나요


잠시라는 바램조차 무뎌지면

그땐 그대를 다시 만나

그립고도 벅찬 순간


잠시만 그댈 잊게 되면


잠시만 그댈 잊게 되면

아주 깊은 밤 그댈 만나게 돼요


잠시만 그댈 만나게 해줘

홀로 지샐 밤 다시 그대처럼 빛나게



아래는 제가 실제로 기획안에 썼던 가사 분석 내용입니다.
*실제 제가 작성했던 기획안 中


화자에게 ‘그대’라는 존재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깊은 존재입니다.
마치 오래전 사별한 연인처럼, 화자는 ‘그대’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간 만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화자의 태도가 대비되는데, 1절에서 화자는 그대가 곁에 없어 공허함을 느끼고 기다림이 너무 길어 나약해진 상태입니다.
반면에, 2절에서는 마음속에 그대와의 만남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집니다. 보다 능동적으로 만나리라는 것을 바라고, 확신합니다.
'접몽' 비하인드


위 'LYRICS' 이미지에서 보시다시피, '그대는 총천연색' 한 곡으로 제가 생각한 모든 서사를 풀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민하며 음악을 듣던 중, 같은 앨범 중 하나의 트랙인 '접몽'으로 인물의 꿈속 서사를 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아티스트에게 제안을 했고 그 결과 두 곡을 하나의 비디오로 합쳐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티스트는 '너무 예술적이고 어렵지 않은 영상'을 원했기 때문에, 저는 그가 가진 '인디적인' 색깔을 살려 구성은 씨네마틱하되, 아련하고 몽환적인 비주얼의 톤 앤 매너를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오래전 사별한 첫사랑을 계속 잊지 못하고 꿈에서 나마 만나리를 학수고대하며 살아가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로그라인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시작과 그 과정은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 끝에는 희망이 있는 스토리를 써내려가면서요.

*로그라인: '이야기의 방향을 설명하는 한 문장' 또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 줄거리'


*실제 제가 작성했던 기획안 中
*실제 제가 작성했던 기획안 中
*실제 제가 작성했던 기획안 中
*실제 제가 작성했던 기획안 中


이 과정 속에서, 비슷한 무드를 가진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윤희에게’, ‘영주’, ‘봄날은 간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리틀 포레스트’ ‘벌새’, ‘박하사탕’, ‘러브레터’, ‘국화꽃향기’ ‘Paranoid park’, ‘Erika’s Hot Summer’ 등을 보며 아이디어의 영감을 얻었고, 콘티 작업 및 실제 촬영 때의 레퍼런스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꿈 속에서 그대를 만났다'는 키 메시지를 뽑게 되었고, '윤희'라는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위 기획안이 완성된 이후, PPM 과정 및 편집 단계에서 스토리라인의 일부가 바뀌기도 했고, 로케이션 헌팅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2부에 이어서 풀도록 하겠습니다.

*PPM : Pre-Production Meeting의 줄임말. 콘티가 완성된 후 광고주(아티스트)와 제작사가 하는 미팅, 소품/로케이션/모델/스타일링/헤어메이크업/스케줄/타임테이블 등 실질적인 촬영에 관해 촬영 전 최종적인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

여기까지 보셨다면, 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영상 링크


(Part 2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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