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그거 빨리 끝내고 다른 일 해야죠!"
"손은 움직이면서 제 말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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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숨 가쁘네..'
어느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된 명희 이모. 체계 잡힌 구조에 다른 곳보다 더 높은 시급을 줬기에 호주 워홀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아무리 힘든 일일지언정 조건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어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특히 호주 워홀러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20시간의 트라이얼 후 합격이 되어 정직원이 되었을 때의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드디어 나도! 직업이 생겼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교육도 받으니 실감이 났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굳은 다짐을 했다.
'열심히 해야지.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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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직원이라면 한 번쯤은 누구나 혼이 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이곳에서 매일매일 혼이 나고 일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는다. 그렇다고 기가 죽진 않았다. 나란 사람을 다그치는 게 아닌 내가 하는 업무를 다그치는 일이니 고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어째서인 지 지적받는 횟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그거 아니죠.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좀 더 빨리 하세요."
"진짜 제대로 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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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억울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내가 업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함에 있어 선배님들이 지적을 하곤 했다. 지적하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다짐하는 횟수 또한 늘어났다.
- 파이팅! 할 수 있다!
- 오늘은 좀 더 잘해보자!
- 똑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
- 정신 똑바로 차리자!
늘 다짐을 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시간 거리를 걸어가기도 했다. 패기 넘치는 출근과는 다르게 나의 업무 능력은 실패와도 같았다. 그렇다 보니 나 자신을 자꾸만 '괴짜 박사가 잘못 만든 로봇'과도 같다며 위축이 되곤 했다.
위축이 되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일을 하려다 보면 또 다시 날카로운 말들이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센스 없다."
"고생 안 해 봤네. 곱게 자랐나?"
이 외에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거나 대답을 하지 않는 등 묘한 어느 선배님의 태도에 눈치를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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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하도 '센스 없다'라는 말을 듣다 보니 어느덧 나 스스로도 '센스 없는 사람'이라며 치부하기 일쑤였다. 이제껏 센스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그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문득 서브웨이에서 일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함께 서브웨이에서 일했던 동료, 민영이(가명)가 떠올랐다. 민영이는 내가 만난 동료 중에서 가장 '센스 없는 친구'였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걸레' 에피소드를 말해주리라..
내가 서브웨이에서 어느 정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 즈음 신입 민영이가 입사를 했다. 민영이는 작은 목소리와 느린 행동이 큰 특징이었다. 큰 목소리와 빠른 행동이 필요한 서브웨이 아르바이트에서 민영이는 어쩌면 잘 맞지 않은 곳에 입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와 느린 행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민영이를 잘 가르쳐 주고 싶었다. 앞으로 함께 일 해야 하는 친구인데 혼자만 동 떨어져 있으면 안 될 테니 말이다.
가장 기본적인 샌드위치 만들기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민영이는 샌드위치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혹여나 자신이 만든 샌드위치가 잘못될까 봐 손을 벌벌 떨면서 재료를 넣곤 했다. 얼마나 심했냐면 내가 팔목을 잡아주기까지 했을 정도다. 긴장을 한 것 같아 오히려 괜찮다며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줬다.
"잘하고 있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샌드위치 만들기 실력은 점점 퇴화되는 것 같았다. 샌드위치 만들기가 어려운 건 아닌데 민영이한테는 어려웠나 보다.
며칠 샌드위치 만들기를 하다가 마감 업무도 함께 하게 되었다. 걸레를 빨고 닦아야 하는 곳을 직접 닦으며 다음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게 알려주었다. 청소는 어렵지 않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민영이는 내게 질문을 했다.
"걸레는 어떻게 빠는 건가요?"
걸레 빠는 위치를 까먹었나 싶어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었다. 화장실 위치만 알려주고 매장으로 들어가려던 때 민영이는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걸레는 어떻게 해야 잘 빨 수 있나요?"
질문이 이상했다. 그냥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빨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직접 보여주면서 알려줬다.
"이렇게 저렇게 깨끗한 물로 빨면 됩니다."
후에는 매장 테이블을 닦으려는데 행주를 빠는 법을 물어보았다.
"행주를 어떻게 하면 잘 빨 수 있나요?"
사실 이해가 잘 안 됐다. 너무너무너무.. 그것도 아주 간단한 일이지 않은가.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행주나 걸레를 잘 비벼서 빨면 된다. 하하.
이 외에도 샌드위치를 만들면서도 처음 해 보는 일인 것처럼 질문을 하곤 했다. 결국 민영이는 서브웨이에서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느린 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발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에 결국 서브웨이 매장과 안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민영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시간이 몇 년 정도 흘러 우연히 민영이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함께 일했던 친구의 친구였다. 민영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 물어보니 학원에서 채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일은 적성에 잘 맞나 물어보니 생각보다 오랜 기간 채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하고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문제지 채첨을 함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채점을 하는 일이 민영이에게는 잘 맞는 일이라니까 말이다.
잘 지내는 듯한 민영이의 소식에 기뻤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내 상황에 빗대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민영이가 행주와 걸레를 빠는 기본적인 일을 어려워했던 것에 대해 답답하게 생각했던 나. 내가 튀김을 튀기고 재료를 준비하는 기본적인 일을 어려워했던 것에 대해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는 선배님들. 결국 민영이는 다른 직장에서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을 문제지 채점으로 보여주고 있고 나도 이곳과 안녕을 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번 해 볼 수 있을 만큼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바로 도망가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이 매장에서의 내 이미지는 센스 없고 일머리가 없는 부족한 신입이다. 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선 내가 미친 듯이 달릴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속도를 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다. 물론 현재도 최대한 빠르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날의 명희 이모는 센스 넘치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센스 없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현재 속한 직장에서는 말이다. 힘낼 수밖에 없다. 그래, 힘내보자!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인데 가끔 이게 맞나 싶지만 나갈 땐 나가더라도 '명희 정도면 괜찮았지.'라는 말 한마디는 들어보자.
결론 : 센스 없는 외노자가 살아남는 법은? 그냥, 버티자.. 겁나 버티는 거야.. 그것도 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