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상하다
시드니_웨스트 라이드에서 쓴 동화 일부분
가시덩굴 저 너머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오아시스가 있다고 한다. 목이 마르고 힘이 들지만 오아시스에 가기 위해 가시덩굴을 헤치고 헤치고 또 헤쳐본다.
그토록 바라던 오아시스에 도착했지만 상상했던 오아시스가 아니었다. 맑은 물은 온데간데없고 탁한 물만 작은 웅덩이에 고여있었다.
저 멀리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곳을 보니 양손 두둑하게 양동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은 언제 가시덩굴을 헤쳐나간 걸까?'싶은 그때, 나만 몰랐던 가시덩굴 옆 작은 땅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나만 몰랐구나. 나만."
번다버그에서 한 달을 살고 시드니로 넘어왔을 때의 그 설렘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시골에서 도시로 넘어온 한 마리의 작은 쥐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기대했다.
"우와.. 역시 도시는 도시다!"
운 좋게 가격과 상태 모두 좋은 집을 구하고 취업 또한 곧잘 했던 지난날. 시드니에서의 생활이 마냥 잘 풀릴 줄만 알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워킹 홀리데이 생활을 즐기겠구나. 돈도 모으고 여행도 하면서 멋진 워홀러로서 잘 지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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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의지하며 힘이 되는 사이일 줄로만 알았던 룸 메이트는 알고 보니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던 직장에서는 자존감을 잃었다. 어쩌면 이미 보였던 결말이었는데 희망이라는 상상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지내다 보니 이 모든 건 허상이었으니 말이다.
생각했던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생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보는 게 인생의 진리이지 않을까. 결국 집과 직장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 내 감정을 떠나보내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이 기분을 마음껏 느껴보기로 했다.
"아쉬워도 괜찮아. 다 잘 한 선택이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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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빨래를 한 유니폼을 반납하고 매장을 나오는데 날이 어찌나 화창하던지. 아쉬운 마음을 하늘이 달래주는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 깊은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한숨은 지난 시간을 대변해 주는 한숨이었을 것이다.
"짧고 굵었지만 고생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매니저님께 퇴사 사유에 대해 말했을 때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나의 문제라고만 이야기 했다.
"제가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요. 잘 맞지 않는 일인 것 같아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사실 내게는 세 가지의 퇴사 이유가 있다.
1. H 선배님의 텃세
2.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분위기
3. 더딘 요리 실력
이 세 가지 이유로 인해 퇴사를 결정했다. 하루의 반 이상을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일을 하며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고통은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에도 정도가 있는데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있는가 하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동화되거나 내가 그들로부터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다.
또한 나 스스로가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지 못했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조리에 가까운 업무였지만 그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업무 속도에 나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꼈다. 분명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이 부족했다. 어쩌면 이게 나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다면 빠르게 다른 길을 찾는 편이 나에게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요리 실력이 더디기 때문에 생긴 분위기일까, 분위기로 인해 성장할 수 없게 된 걸까.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많이 돌이켜 봤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둘 다'였다. 처음부터 잘하지 못해 나를 주의 깊게 봤던 선배님들은 나에 대해 '부족한 사람'이라 인지하였다. 심지어 나는 제대로 일을 했고 다른 동료가 실수한 건데 실수한 동료에게는 위로를, 제대로 일을 한 내게는 다른 트집을 잡아 혼을 내기도 했다. 자꾸만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나는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부족한 사람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의 문제였다.
문득 한국에서 이야기 나눴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굳이 외국에 나가서 경험을 해야 해? 한국에서도 할 수 있잖아."
이제와 생각해 보니 저 말이 맞다.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경험, 무슨 멋을 느끼고 싶어 외국에까지 나와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지 참.
그동안 겪지 않았던 상황을 맞이하고 극복하고 있는 지금.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 경험은 절대 헛된 경험이 아니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늘 그랬듯 나는 잘해 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니까 말이다!
"1월 7일까지 거주하다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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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가게 되어 집주인님과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갑자기 나가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으나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지역에서 일하게 되었다고만 말을 했다. 횡설수설 하긴 했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편보다는 횡설수설이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집 자체가 너무 좋아 나가는 게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후회는 되지 않는다. 잘 한 선택이라고 몇 번이고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를 세뇌시킨 거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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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느낀 교훈 하나는 한 사람이 다수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한 사람은 지내는데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 이를 풀어나가고자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건 이미 우리는 친구가 아닌 '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그 이상으로 느끼며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난날이 있었다. 지내다 보니 이상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었다. 결국엔 이 또한 허상이었다.
함께 살고 있는 홈 메이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가 왜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언니가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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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됐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친구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했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절망적이다.
이 모든 것은 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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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시 구상하려 한다.
무엇을?
나의 호주 라이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