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크리스마스
한국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고 한다. 8년 만에 찾아온 꿈에 그리던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라니.. 너무나도 부럽지만 남반구에서 보내는 한 여름날의 크리스마스도 잘 즐겨보기로 다짐했다. 참고로 호주 시드니는 비 오는 날의 크리스마스다.
드디어 어드벤트 캘린더의 마지막 초콜릿을 개봉했다. 매일매일 초콜릿 하나씩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는데 막상 마지막 초콜릿을 마주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뭔가 정든 친구를 떠나보내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생각해 보면 그동안 매년 마주했던 크리스마스는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하는 그 기간이 더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11월 말부터 캐롤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거리에는 반짝이는 불빛이 추운 겨울을 데워줬던 그 따뜻한 기억. 그 기억 덕분에 크리스마스를, 아니 아니 겨울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호주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사실 별 거 없다. 그냥 따뜻한 12월 25일일 뿐 별 다른 느낌은 없다. 크리스마스에 뭘 해야겠다!라는 생각도 없다. 집에서 하루를 기똥차게 보내고 싶을 뿐이다.
“음... 나만의 스타일대로 한 번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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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집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무엇이 있을까.. 가지고 있는 재료가 한정적이지만 나름의 분위기를 내고 맛도 기똥찬 녀석으로 메뉴를 선정하고 싶었다. 고심한 끝에 고른 메뉴는 [오므라이스]다.
케첩이 얼마 없어서 조금 싱겁게 먹은 오므라이스지만 알록달록한 야채와 노오란 계란 지단이 크리스마스를 장식해 주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배도 채우고 기분도 좋은 메뉴, 오므라이스!
CHAPTER 2. 크리스마스 복장을 준비한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따로 구매한 건 없으나 케이마트에서 15불 주고 구매한 크리스마스 반팔티를 입어줬다. 스누피가 그려진 초록색 반팔티인데 호주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반팔의 크리스마스 굿즈(?)라 특별하게 느껴진다.
CHAPTER 3. 달달한 케이크를 준비한다.
비싼 케이크는 필요 없다. 그냥 기분이 좋아질 만한 초콜릿 케이크 하나면 충분하다. 마트에서 8불 정도에 구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인데 마침 집에 초도 있어서 더욱 확실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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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이 정도면 됐다. 12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시간 때 케이크에 초를 불 예정이다. 시간이 좀 남아서 남은 시간 동안 노래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캐롤만 듣는 건 시시해서 2000년대 댄스곡으로 들어줬다. 1시간 넘게 몸을 둠칫 둠칫 하면서 노래를 즐겼다. 8할이 싸이 님의 곡이었다. 싸이 님의 노래는 정말 신이 난다 신이 나!
자, 시간이 됐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도 붙였다. 두 손을 야무지게 모은 후 소원을 빌었다. 뭐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고 딱 두 가지의 소원만 빌었다. 하나는 나에 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의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산타 선생님... 제 소원 꼭 들어주세요!"
콜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고 흐린 요즘이지만 시드니의 밤하늘만큼은 매일매일이 리즈다.
호주에서 보내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정말 정말 별 거 없지만 따뜻한 날씨만큼 마음도 따뜻했던 하루였다. 나의 홀리데이를 위해 좋은 말을 전해주는 한국의 친구들 덕분에 따뜻하게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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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크리스마스는 이제 지났고.. 12월 31일엔 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