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빠짐없이 나오는 소재가 있다. 바로 무시무시한 시월드. 각자 자기들만의사연들로 다양한 캐릭터를 장착한 시어머니와 세상 답답이 남편들, 그 속에서 살고자 몸부림치는 약자인 며느리이자 아내인 우리들.그 와중에 나는 시댁에서 5년을 살았으니 "시댁에서 같이 살았을 때..."
운을 띄우면 구구절절한 사연을 디테일하게 말하지 않아도 전우애 같은 우리들은 격한 공감의 끄덕임과 함께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주면 그동안 고생했던 나의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 곤 한다. 신혼시절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아온 5년의 경험이 돌이켜보면 어디 아픔만 있었겠나.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잘 자랄 수 있었고, 복잡 다양한 관계 속에서 적응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다 보니 인간관계에 성숙함도 한 스푼 장착이 되었고, 시댁에서 잘 버텨준 나를 인정해 준 남편도 곁에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들이 나에게 다시없을 황금알이라는 보물을 선물해 줄 거라고는 그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황금알을 낳게 된 여정은 12년 전, 결혼을 앞두고 남편은 상의 없이 신혼집을 선택하면서 시작되었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덤덤하게 신혼집의 위치를 알려주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기고는 마음속의 의문들이 계속 샘솟기 시작했다. 서울 안에 나의 발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생소한 곳, 이름조차도 낯설어서 서울이 서먹해질 만큼 생뚱맞은 곳을 선택하기까지, 그리고 전세 계약까지 하는 과정 속에서 왜 '나'는 포함되지 않았을까? 이미 결정은 끝났고 통보하면 나는 군말 없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건가? 결혼을 앞두고 처음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려질 무시무시한 결혼의 현실을 맛보기로 미리 체험한 느낌처럼. 여러 의문들을 품고 나니 이제는 서운함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한테 몇 가지의 선택지만 줬어도 이렇게 당황스럽진 않았을 텐데. 그게 어려웠다면 차라리 고민을 하고 있는 흔적이라도 좀 보여줬다면 이런 서운한 감정은 없었겠지? 내 표정에서 대답을 들었는지 정적을 깨고 그는 넌지시 말을 이어나갔다. 서로의 회사 위치를 충분히 고려해서 선택했다는 담백한 설명뿐이었다. 대문자 T인 그는 나의 마음 상태는 안중에도 없었나 봐. 죄 없는 내 입술을 뜯고 있다가 조용히 한 글자 한 글자 곱씹듯이 내뱉었다.
"나와의 대화가 회사의 위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이 집과 무조건 정을 붙여야 했다. 하지만 그게 갑자기 생기는 게 쉬운 일인가. 매일 낯선 곳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지만 적응하려고 장점들을 열거해 보기로 했다. 가만 보자, 일단 역세권이라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5분 거리였고, 집에서 회사까지 30분이면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잖아. 또 집이 신축 아파트니까 깔끔하지. 그다음은...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네. 장점이 단점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며 감정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역세권인데 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지? 아파트가 신축이면 뭐 하냐고. 나 홀로 아파트라 주변상권이 없어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매일같이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수많은 장점과 단점의 생각들이 오고 가며 내린 결론은 이 신혼집 자체가 불만이라고 하기에는 이 집이 딱히 나쁠 게 없었고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신혼집에 정을 붙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독단적으로 결정한 남편의 행동에 대한 서운함을 이 집에 화풀이를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첫 단추를 잘못 꿰맨 거야.'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탈출하고 싶다! 를 마음속으로 외치곤 했다.
허니문 베이비로 결혼하자마자 신혼 생활은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입덧과 함께 출산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아이의 물건들이 채워질 때마다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신혼집에 애정을 가지려 부단히 노력했다. 창밖 너머로 삭막해 보이는 뷰를 감추려 가림막을 놓고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은 식물들을 하나둘씩 채우면서 내가 있는 곳의 현실을 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남편은 아마 모르겠지. 하지만 그 노력은 출산을 하고 나서 더욱더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친정 부모님 집과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자주 볼 수 없었고, 유모차를 끌고 내려가면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는 길이나 공원이 없어서 좁은 단지 안에서 겨우 몇 바퀴 돌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답답한 일상이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더욱이 아이를 낳으면 가장 필요한 곳이 마트이거늘.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에 물건들을 손쉽게 받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직접 가서 구입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편의점이 마트를 대체하고 있는 이곳. 주말까지 기다려서 남편이랑 차로 대형마트를 갈 수밖에 없는 여기는 아이를 키우기에는 썩 좋은 곳이 아님을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는 나도 남편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분명한 건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가족의 모습은 이곳에서는 도저히 아름답게 색을 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거기에다 나의 불씨를 확 지피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