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는 초보 서퍼들에게 이런 조언을 합니다. "힘 빼지 마세요"
사진: Unsplash의Joseph Greve
제목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했습니다. 직업병 때문인지 클릭률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최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핵심 키워드 3개를 이어붙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기 시작한 당신은, 3개의 키워드 중 최소 1개 이상에 흥미를 느꼈을 것입니다. 부디 이탈 없이 글의 마지막 문단까지 읽어주시길 희망합니다.
최근 언론사에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짧은 칼럼을 기고할 일이 있었습니다. 매니징하는 역할에 집중하며 잠시 잊고 있던 실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기회였습니다. 성장, 인사이트, 전문성, 데이터 등 여러 주제가 스쳐갔고 ‘본질’이라는 키워드에 멈추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업무 관련 피드백 주는 것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말하는 방식, 예시의 구체성, 각자의 배경지식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결과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은 방법은 문제를 ‘Yes/No 질문’으로 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A라는 매체의 CPI가 타 매체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아래와 같이 질문을 정리하고 대답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대응방안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1. A매체 내 동종업계 CPI 레퍼런스보다 높은가
2. 타 매체와 크게 차이 나는 지표가 있는가?
3. 특정한 액션아이템으로 해당 지표를 개선할 수 있는가?
상당수의 문제는 상기와 같은 접근법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피드백 방법을 발견했다고 자신하며 몇 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자신은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의해 조금씩 무너져 갔습니다. 지난 2021년 애플이 시작한 개인정보보호의 물결은 지표의 ‘정확성’을 낮추기 시작했으며, 유동성 파티가 끝난 뒤 찾아온 거시경제의 어려움은 퍼포먼스 마케팅 시장에 ‘비용 절감’이라는 새로운 챌린지를 부여했습니다.
“이제 지표를 신뢰할 수도 없는데, 마케팅을 왜 해야 하는 거지?”
위와 같은 물음이 광고 수요자 측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Yes/No 질문’ 형식의 한계성은 분명해졌습니다. 단답형, 혹은 한 두 줄의 액션 아이템으로 떨어지는 질문은 문제의 본질보다는 현상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과 관련된 챌린지가 늘어날수록 퍼포먼스 마케터의 한계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워라밸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오래된 취미 몇 개는 꾸준히 즐기고 있습니다. 그중 ‘서핑’은 팬데믹 기간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몇 초의 라이딩을 위해 열심히 패들링 할 때를 보면, 참 퍼포먼스 마케팅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미디어 바잉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그마한 실수라도 있다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점 또한 짜증 나게도 닮아 있습니다.
서핑을 하다 보면, 라인업(=파도가 부서지는 바깥쪽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서퍼들은 여기에서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저쪽에서 오는 파도가 더 적당한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좋은 파도는 여러 라인업에 걸쳐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옮겨 다닌다고 파도를 더 잘 탈 수 있을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생각보다 패들링에 너무 많은 힘을 써서 실제 파도를 잡을 어깨 힘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머피의 법칙과 같이 꼭 다른 라인업으로 옮기면 원래 있던 자리에 좋은 파도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초심자들이 서핑에 흥미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실제 파도를 잡는데 힘쓰기보단,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데 힘을 다 써버렸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좋은 파도가 눈에 보이면 그쪽으로 달려가려는 가장 원초적인 판단이 주요 원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보 서퍼들에게 이런 조언을 합니다.
“힘 빼지 마세요”
미디어를 운영할 때도 비슷합니다. 데일리 단위로 지표를 뜯어보다 보면 어제는 CVR이 상승했는데 오늘은 CVR이 하락했고, 어제 CPM은 높았는데 오늘은 평균 수준을 보이는 등의 파도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응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분석’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퍼포먼스 마케터는 분석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사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분석을 위한 raw data 취합과 전처리에 상당 시간을 할애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분석을 위한 인프라 작업, 혹은 분석 그 자체에 너무 많은 리소스를 쓴 나머지 진짜 액션을 위한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를 너무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제한된 리소스 안에서 실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래서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 분석력, 논리력을 넘어서는 퍼포먼스 마케터의 숨겨진 필요 역량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서핑에 공감하지 못할 분도 계실 것 같아 다른 주제를 꺼내보려 합니다.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벼락 거지’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전 국민이 투자 열풍이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투자 대열에 합류했고, 지금은 파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현금 가치가 떨어지니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겠다는 논리였지만, 단기 고수익과 일확천금을 노렸고 차트를 분 단위로 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그리고 지옥의 순간에는 매도 버튼을, 천국의 순간에는 매수 버튼을 클릭하며 전형적인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차트 매매법을 공부해야 하는구나!”
열심히 볼린저 밴드와 이동평균선을 확인하며, 파이어족이 되겠다는 장밋빛 미래도 그렸습니다. 그렇게 2022년을 맞이했고, 지금은 주식 앱을 지운 채 열심히 본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겠다’는 원칙은 사라진 채 어설픈 기술적 매매에 집중했던 것이 패착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신규 입사자분들에게 퍼포먼스 마케팅을 가르칠 때 비슷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이들에게 CVR과 ROAS는 이동평균선과 같겠다.’ 초심자에게 지표는 그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지표를 바라보며 씨름하다 보면, 점점 데이터의 정확도가 낮아지는 환경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표를 보고 대응을 공식화하려는 팀원에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며 다른 대응의 가능성을 던지곤 합니다. 지표는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이기도 하며, 생각이 범위가 굳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CVR이 낮아졌으니 타겟을 바꿔야겠네!"
과연 그럴까요? 실제로 위와 같은 사고의 흐름으로 신규 타겟에게 부합한 소재를 기획하고 제작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겟과 소재를 변경하기도 전에 CVR은 회복 되었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광고하던 서비스에 일시적인 장애가 있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3rd party data를 주로 다루는 입장에서, 광고 지표의 신뢰도 하락은 업무 방식 근본이 흔들리는 일입니다. 수단이 고민될 땐 목적을 다시 상기해 보면 방향성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마케팅 환경에서는 기술적 가치보다는 본질적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인재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마치 제가 ‘지표는 다 쓸모없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표를 보기 전 ‘이 지표가 왜 구성되었고 어떤 현상을 대변하며 그 현상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일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더 가깝습니다.
‘본질에 집중하자’는 말을 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본질’에 집중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팀민트는 ‘비본질적인’ 업무와 고민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조금 더 가치 있는 곳에 투자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팀원들에게 구두로 일하지 말라고 가이드하면서, 세상 구두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는 모순적인 사람인지라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 혹은 팀민트가 생각하는 마케팅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주저말고 콜챗/커피챗 요청주시기 바랍니다. :)
written by, 조규헌
“어차피 인생은 디타겟팅이에요. 하고 싶은 걸 찾는 것보단, 하기 싫은 걸 찾는게 더 빠르고 효과적이거든요”
現. 팀민트 퍼포먼스 마케팅 총괄
前. 모비데이즈 Data Marketing 팀장